1. 들어가는 말
2. 당시의 시대상황
3. 친일이 조선에 미친 영향
3.1 긍정적인 영향
3.1.1 인구의 증가
3.1.2 시간에 대한 개념 도입
3.1.3 교통수단의 발달
3.1.4 그 외의 발전 사항들
3.2 부정적인 영향
4. 한국 교과서의 문제와 교육현실
5. 대안
6. 결론
3.1 긍정적인 영향
3.1.1 인구의 증가
인구는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는 어쩌면 잘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100년 전처럼 발전의 폭이 클 때에는 곧 사람의 수가 발전의 잠재력을 뜻하기 때문에 맞는 말일 것이다.
일제의 합병 후부터 해방까지 인구를 비교하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다. 1300만 명에서260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대장성 관리국 「일본의 해외 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통권 제 11권/조선편 제 충분히 권,33-40 쪽.
*大蔵省管理局「日本の海外活動に関する歴史的調査」通巻第十一冊/朝鮮篇第十分冊、33~40頁.
인구변이
「조선 총독부 통계 연보」조선 총독부편
연차
연말 늘 인구·(주) 1944년은 5월
1910 (한일 병합년)
1312만 8780명 (주)초기의 조사는 정도가 낮다고 여겨지고 있다
1915
1595만 7630명
1920
1691만 607 8명
1925
1854만 3326명
1930
1968만 5587명
1935
2124만 8864명
1940
2295만 4563명
1944
2512만 0174명 (이 그 밖에 일본 내지나 만주에 수많은 조선인이 있었다)
이는 상식적으로 식민지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단순히 조선인을 착취하기 위해 많이 먹이고 많은 혜택을 주어서 인구를 늘렸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이는 조선인을 일본의 국민으로 편입하고 대우해줘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3.1.2 시간에 대한 개념을 도입
조선에도 물론 시계는 존재하였고 시간개념도 어렴풋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 때 발명한 물시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궁 안의 사람들만 사용했을 뿐 일반 백성들은 그 존재조차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지 아침에 닭이 울면 아침이 온 것을 알았을 것이고,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정도만 알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서구의 시간 개념이 도입되고, 일본인을 통해 시계가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조선인들은 시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생기고 근무를 할 때에도 시계를 사용하였다. 특히 양속에 대한 개념이 새로이 생겨났으며 철도가 들어오는 시간을 알 수도 있게 되었다. 즉, 여러 분야에서 큰 생활에 변화를 이루었다.
김형국,(1983)『국토개발의 이론연구』, 전영사
대장성 관리국 「일본의 해외 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통권 제 11권
大蔵省管理局「日本の海外活動に関する歴史的調査」通巻第十一冊/朝鮮篇第十分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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