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겨 스케이팅의 정의
3.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
3.1 유래
3.2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이모저모
4. 피겨 스케이팅의 경기 종류 및 규정
5.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
5.1 점프
5.1.1 토 점프
5.1.2 엣지 점프
5.1.3 회전과 콤비네이션
5.2 스핀
5.2.1 업라이트 스핀
5.2.2 싯 스핀
5.2.3 카멜 스핀
5.3 리프트
5.4 스텝과 턴
5.4.1 스파이럴
6. 맺음말
◈ 참고문헌
피겨 스케이팅(Figure Skating)이 시작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00년대 부터 이미 스케이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세계 최초의 피겨 스케이팅 클럽이 설립된 것은 1742년 영국에서였다. 실제 피겨스케이팅은 모든 스케이팅 종목 중에서 가장 빠르게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1770년 미국인 화가 벤자민 웨스트가 세계 최초의 스케이트 선수권에서 우승했다라고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며 이때부터 피겨의 초보자도 할만한 스텝들이 고안되고 비엔나, 부다페스트, 프라하, 뮌헨, 베를린 등은 스케이트 열광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초기의 피겨 스케이팅은 매우 기계적이고 딱딱해서 단지 얼음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형태의 도형을 블레이드(Blade)로 그리는 것이어서 현재 우리가 흔히 피겨 스케이팅 하면 떠올리는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춰하는 연기(performance)와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피겨를 '빙상의 예술'로 만든 사람은 잭슨 하인즈(Jackson Haines:1840-1876)였다. 그는 발레 무용수출신으로 여러 번 유럽을 드나들면서 리듬감 없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음악과 결부시킨 스케이팅을 고안하며 현재 우리가 즐기는 피겨 스케이팅의 주요한 기본을 만들어 '현대 프리 스타일 피겨 스케이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킨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얼음 위에 일정한 형태의 도형만 반복해서 그리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0년 세계스케이팅연맹(ISU:International Skating Union)의 결정으로 컴퍼서리 (Compulsory:School Figure)요소(지정된 도형을 블레이드로 그리는 것)가 공식대회에서 제외될 때까지는 초기의 기계적인 요소가 중시되었었다. 어쩌면 그 때의 ISU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인 선수가 컴펄서리 요소 때문에 낮은 순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피겨스케이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27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3.2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이모저모
근 20년 간의 올림픽은 수많은 재밌는 승부를 남겼다.
88년 올림픽 여자싱글은 카타리나 비트(Katarina Witt)로 묶어서 말할 수 있다. 동독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자 피겨 선수였으며 동계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세계선수권 4회 우승,유럽선수권 6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나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프리 프로그램에서 라이벌인 데비 토마스와 같은 곡인 Carmen을 사용하여 이 당시의 대결을 '카르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88년 올림픽 최고의 승부는 남자싱글 부문에서 일어났다. 바로 "브라이언 전쟁"이라고 불렸던 캐나다 대표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와 미국 대표인 브라이언 보이타노(Brian Boitano)의 대결이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 점프를 성공시키며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고 불렸고, 캐나다산 버터바른 섬세한 스케이팅을 선보이던 브라이언 오서와 남성미 넘치는 연기와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려 뛰는 "타노점프"를 창시한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계속 1, 2위를 주고 받으며 수많은 피겨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캘거리 올림픽에서 둘 다 합계 81.8 이라는 동점을 받았으며 9명의 심판 중 5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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