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The Past And The Present plus The Future
3. Philosophy
4. Brain Interaction
5. Hyper Sapiens
Reference
• 현실과 가상의 구분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가 ‘매트릭스’를 보았는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워쇼스키 형제 로런스 "래리" 워쇼스키(Laurence "Larry" Wachowski, 1965년 6월 21일 ~ )와 앤드류 "앤디" 워쇼스키(Andrew "Andy" Wachowski, 1967년 12월 29일 ~ )는 미국인 영화감독들이자 작가로,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하다.
가 데카르트의 철학적 문제를 고민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인간은 한 번쯤 멀리 있는 산이 작아 보이는 것이 원근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산이 실제로 작아져 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 산이 작아지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과연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실제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현실을 그대로 보는가?
현실뿐만 아니라 현재도 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은 빛을 통해 세상을 본다. 빛은 진공에서 유한한 속도로 움직이므로 우리가 특정한 곳을 바라본다면 빛이 우리 눈까지 오는데 아무리 적어도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므로 항상 우리는 방금 전이든 아주 전이든 과거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망원경으로 수백 만 년 전 또는 수십 억 년 전의 과거를 본다고 하는 것은 거리가 과거자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감각기간의 신경체계를 통해 뇌에서 재해석된 정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뇌에 감각과 일치하는 전기적 신호를 준다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시사해주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전에서도 나온다.
『(장자)莊子』 장자 [莊子, BC 369~BC 289?]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이는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며(無爲),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自然)고 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주요 저서 《장자》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라는 책의 제물론 편(齊物論篇)에서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다.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구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현실과 꿈의 구별이 모호한 것처럼, 우리가 이것은 분명 현실이다라는 절대적인 정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왜나면 모든 것은 우리 두뇌의 전지적 신호의 특정한 집합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의 세계에 당신을 초청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물음에 내주위의 절반이상이 초청에 응하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 이 자체가 절대론에 입각한 구분의 일부분이 아닐까? 세상 어떠한 곳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듯이 그러한 구분자체도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자체는 어떠한 기준을 두고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감각이 존재하는 곳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간에 우리가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3. Philosophy
• 절대성과 상대성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제창된 이론, 상대성원리: 물리학의 모든 법칙은 모든 관성 기준틀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광속의 불변성: 빛의 속력은 관찰자의 속도나 광원의 속도와 관계없이 모든 관성 틀에서 동일한 값(c = 2.99792458×108m/s ≈ 3×105km/s)을 갖는다. 라는 기본 공리로 출발한다.
의 발표이후 충격을 입은 학계는 과학계가 뿐만 아니라 철학계 일 것이다. 왜냐면 자연계의 틀을 절대계에서 상대성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바꿔버림으로서 인간의 자연적 사고 영역
또한 그 영향력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절대적 기준, 지침표가 되는 것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믿음 토대가 흔들리면서 많은 변화가 존재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그의 시에서 '신은 재난을 방지할 수 있으면서도 방지하려고 않았는가, 아니면 재난을 방지하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는가' 라며 푸념한다.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딜레마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그 답은 무엇일까? 우리는 선과 악의 개념차이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즉 절대적 악이 존재하는지 절대적 선이 존재하는지의 의문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처럼 난해하기만 하다. 과연 선과 악은 항상 구별가능하며 시공간을 초월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나에게 또는 사회에게 더 나아가 인류에게 이로우면 선이고 해로우면 악인가? 그 이로움의 판단기준과 지속성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개인에게 이롭지만 사회에게 해로운 경우는 악인가? 한 사회에 이롭지만 다른 사회집단에게 해로운 경우에는 선, 악이 어떻게 판단해야하는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전쟁의 경우는 무조건 악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해나가는 과정이란 잔혹하기 그지없다. 결국 과학적인 상대성이론이 여기에 조금이나마 해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결국 이런 무수한 질문들은 선, 악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으로 수렴한다. 세상에는 절대 공간, 절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론처럼 관측자에 한에 무한한 상대적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뿐이다.
즉 입장에 따라 기술하는 시각이 달라진다.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의 경우에 상대성이 지배적인 이론이라면 모태인 철학의 경우에도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선과 악의
• 『장벽이후의 생성문법』- 노암 촘스키 - 홍종선 역, 집문당
• 『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 최재천, 이상임 옮김, 사이언스 북스
•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옯길, 김영사
• 『철학이야기』 - 윌 듀란트- 임헌영 옮김, 동서 문화사
• 『홀로그램우주』 -마이클 탤보트- 이균영 옮김, 정신 세계사
• 『브레인 스토리』 - 수전 그린필드- 정병선 옮김, 지호
•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글렌 예페스 엮음- 이수영, 민병직 옯김, 굿모닝 미디어
• 『두문화』 - C.P 스노우 - 오영환 옮김, 사이언스 북스
• 『인간 본성에 대하여』 - 에드워드 윌슨-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 북스
•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 스트븐 호킹 - 김동광 옮김, 까치
• 『파피옹』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미연 ,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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