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황룡사지(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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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학] 황룡사지(답사자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경주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는 이 절터는 칠처가람지허의 하나로 황룡사는 규모나 사격이 신라에서 가장 크고 높은 절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절터는 과거불인 가섭불의 연회좌석이 있는 곳으로 가섭불 시대부터 있었던 가람터라 하였는데 이는 신라 땅이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절로 고쳐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하고 황룡사라 이름하였다.
그후 574년 서천축의 아육왕이 철 57,000근·금 3만분으로 석가삼존 불상을 만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자 이 금과 철을 바탕으로 장육존상을 주조하였다. 이 삼존불상 중 장육존상은 금 10,198분·철 35,007근으로, 두 보살상은 철 12,000근·금 10,136분을 들여 만들었으며 이들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금당을 고쳐지어 584년에 완공하였다. 643년(선덕여왕 12)에는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이 국가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고자 청을 올려 9층목탑을 조성하였는데 이 목탑은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와 신라의 용춘이 소장 200명을 거느리고 일을 주관하였다. 목탑은 전체 높이가 225척이었으며 자장이 부처의 진신사리 100립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신라 삼보인 이 목탑과 장육존상은 1238년 몽고의 침입에 의하여 불타고 그후 고쳐짓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