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학]설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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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생활과학]설탕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설탕의 역사
설탕 제조법
일본 설탕 종류
조리 및 요리
설탕의 전파 과정
본문내용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인 네아쿠스(Nearchus) 장군은 기원전 325년 인더스강을 따라 인도 동부 지역을 답사한 후 수수와 갈대에서 '꿀 같은 것'이 자란다고 기록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은 인더스 계곡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탕수수의 즙을 발효시켜 나눠 먹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스인들과 당시의 기본 식품이었던 꿀과 소금에 빗대어 설탕을 설명했다. 그들은 '인도소금' 혹은 '꿀벌이 만들지 않은 꿀'이라 불렀고, 극소량에 엄청난 값을 치뤄야했다. 헤로도토스는 '인조 꿀'이라 했고, 플리니우스는 '사탕수수에서 딴 꿀'이라고 했다. 사탕수수 발효액은 꿀처럼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네로 황제 시대의 기록에 비로소 라틴어 명칭인 '사카룸'이 등장하는데, 역사가 디오스코리데스는 "인도와 아라비아 지방의 사탕수수로 만든 딱딱하게 굳힌 꿀의 일종으로 사카룸이라 부른다. 소금과 질감이 비슷하며 입 속에서 쉽게 녹는다."고 적었다.
귀한 약품을 가리키던 중세 라틴어 '사카룸'이 세월이 흘러 설탕의 대체물(사카린)을 뜻하게 됐고, 원래는 '자그마한 조각'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칸다'가 달콤하다는 의미만 남아 이슬람어와 라틴어를 거치는 언어상의 변천을 겪고도 캔디라는 단어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