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체결과 전쟁의 유산
2. 평화의 도래와 남로당계의 재판
3. 전쟁이 가져온 피해
*저우언라이의 제안과 배경
1953년 3월30일 저우언라이 수상은 중국의 종래 입장을 양보하여 포로인도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하여 정전회담을 재개시켜 타협에 이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런 중국의 양보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외부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트루먼에서 아이젠하워로 바뀌면서 원폭사용 고려 등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스탈린이 평화공존을 강조하면서 박헌영을 한국전쟁 실패책임을 물어 체포하는 등 전쟁수습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김일성 또한 이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곤란이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타협할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클라크의 부상포로에 대한 즉시교환 제의가 계기가 되었다. 스탈린 사망 후 그의 후계자 말렌꼬프가 국제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서 소련의 입장은 정전 쪽 임이 드러났다. 마우쩌뚱은 김일성과 펑떠화이와의 상의를 통해 포로는 정전과 동시에 인도하고 포로는 중립국에 인도하자는 성명을 준비하여 저우언라이가 발표하였다. 이에 김일성과 몰로또프 외상은 찬성을 대외적으로 표시하였다. 반면 미국은 원폭사용을 의논하면서 중국이 정전을 위한 포로문제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저우언라이의 제안은 이들이게 중대한 이니셔티브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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