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의 특성과 정치 및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우선 러시아 정교의 도입을 알아보자. 980년 블라디미르공은 키예프를 점령한 이후 키예프대공이라는 전제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블라디미르공은 초기에는 이교를 장려하여 민족의 통일을 도모하였지만 이후 러시아 루시를 국가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를 찾게 되었는데, 당시 유행하고 있던 동방정교, 로마 카톨릭교, 이슬람교, 유태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시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를, 러시아 동쪽에 있는 하자르인들은 유대교를, 그리스인들은 동방정교를, 프랑크인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로마카톨릭을 믿고 있었다.
블라디미르가 이 많은 종교가운데 동방정교를 수용한 것은 무엇보다도 키예프인들의 현세지향적이며 신인동격체인 민간신앙의 전통이 그리스정교와 가장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러시아정교회는 처음부터 전통적인 민간 신앙의 기반에서 받아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정교회는 국민들의 큰 저항이 없이 슬라브인들의 통합을 촉진시키는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정교가 처음부터 키예프 국가의 필요와 기존의 민간신앙 전통 위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러시아정교는 현세 지향적인 민족신앙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민들 역시 민간신앙의 연장선상에서 정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러시아정교는 나름대로 농민들의 지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도시의 엘리트 중심의 정교가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러시아정교는 농민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경작의 무게나 강수량의 적절한 배분, 유용한 작물의 성장, 가축의 방목 등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과거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던 민간 신앙들이 정교 의례로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계절주기에 따르는 농민의 민간 축제와 정교 의례가 뒤섞이게 되었다. 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정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민간신앙과 부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새로운 것(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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