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근대 관찬사서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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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사] 근대 관찬사서의 변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근대 관찬사서 변화
3.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
4. 조선서편수회와 식민사학의 확산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서구의 제국주의국가가 경제수탈과 군사기지의 확보를 위하여 식민지를 경영하였던 것과는 달리 일제는 이에 더하여 민족말살까지 획책하였다. 일제의 한민족말살정책은 식민통치의 전 기간을 통하여 계속 되었으며 한국사의 왜곡과 식민사학의 부식도 이러한 식민통치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일제는 ‘조선사편찬위원회’ 및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우리민족의 역사왜곡 및 식민사학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본문에서는 ‘근대 관찬사서의 변화’와 ‘조선사편찬위원회’ 및 조선사편수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근대 관찬사서 변화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는 의정부 산하에 편사국(編史局)을 두어 “본국 역사의 편집을 관장”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편 이때 신설된 학무아문에는 편집국이 설치되고 여기에서 “국문 철자, 각 국문 번역 및 교과서 편집 등을 관장”했다. 따라서 의정부 편사국에서는 종래 춘추관(春秋館)에서 담당해왔던 역사의 편찬을, 학무아문 편집국에서는 교과서의 편찬에 대한 업무를 나누어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895년 4월 2일에 반포된 「내각 및 각부 분과규정(分課規定)」을 통해 의정부 편사국은 내각 기록국과 산하 사적과(史籍課)로 격하되었다. 그 후 일제는 1922년에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했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하여 식민사학의 심화·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3.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는 1921년에 이미 재등실(齋藤實)총독의 발의로 계획되었다. 이때 계획된 《조선사》는 1921~26년의 5년간에 걸쳐 완성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회에 대한 관습조사도 겸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최초의 계획안은 흑판송미(黑板勝美), 내등호차랑(內藤虎次郞)등 일본사학자들과의 실무적인 협의과정에서 수정·변경되었다. 즉 사업기간을 10년으로 늘리고 부위원장 제를 폐지하였으며 《조선사》도 사회조사의 성격을 축소하여 전문사서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편찬위원회는 총독부의 훈령에 따라 설치된 사서편찬을 전담하는
참고문헌
1. 조동걸,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 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2. 조동걸 외 공저,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