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서 빛을 추구하는 인간
●독단은 지혜를 결여한다.
●영원 불멸의 이데아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국가
●현대적 의의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만물에는 목적이 있다.
●이성은 자연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을 따를 때 행복해질 수 있다.
●공동체는 인간 본성의 실현을 돕는다.
●존재와 당위의 구별 없는 세계
이후 플라톤은 영원불멸을 추구하며 이데아라는 이상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 세계에서 우리의 도덕 기준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때 도입한 개념이 바로 ‘선(善)’이다. 선은 우리의 일상 세계의 특징과는 구별되며 그것의 타당성은 인간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인간의 믿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의 세계에 대한 요청으로 플라톤은 지식과 믿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본성상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믿음 때문에 잘못을 범하게 되므로 ,참된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인간의 본성을 바르게 해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자신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을 자신의 형이상학 위에 세우려 했다. 대중의 변덕스런 믿음에 좌지우지 되는 민주주의 대신 플라톤은 본질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통치자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즉 왕은 정의의 본질을 알고 올바른 기준에 의해 모든 일을 판단할 수 있는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플라톤은 선의 형상을 태양에 비유하며 인간의 조건을 어린 시절부터 동굴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처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이들이 어떻게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벽만 볼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 그들의 뒤에는 불이 타오르고 그 불 뒤로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들은 형상의 그림자를 보고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이 형상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사본을 보는 것일 뿐 참된 존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체를 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실체와 마주치고 바깥의 세계에 접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빛의 원천인 태양을 보게 된 그들이 다시 어둠의 동굴 속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다시 오랜 시간 어둠에 적응해야하며 사람들은 모두 그의 눈이 잘못된 것이 때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신성한 명상을 저버리고 인간의 사악한 상태’로 전락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무지에서 깨어나려면 영원한 형상에 대한 지식을 자져야 한다. 형상에 대한 비전이 인간의 염원하는 최상의 것이며 교육의 목표 동한 형상에 대한 비전을 만드는데 있다. 그러나 이런 이데아의 세계를 제시하는 이론은 그 세계와의 감응이 어떻게 가능해 지는지를 깨어해야 한다. 플라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아담네시스 즉 상기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모든 학습은 타고난 지식에 대한 의식의 되살림이다. 상기의 과정은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잠재적 지식을, 우리의 마음 전면에 나타난 지식과 구별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무의식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다. 한 때 소크라테스는 만물에 대한 진리가 영혼 속에 존재한다면 영혼은 영원불멸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플라톤이 이데아에 감응하는 방법을 상기에서 찾음으로서 상기의 과정이 영혼불멸로 가는 길이라는 데에 도달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비영속성에 대해 비판하였고 상기의 과정으로 우리가 물질세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형상만이 참되며 타당한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형상세계에 대한 강한 확신은 일상세계를 무가치하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이로서 육체가 영혼의 진리추구를 방해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즉 일상세계에 존재하는 육체는 형상세계에 존재하는 영혼보다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당대의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맞서는 객관적 지식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는 결코 의심받은 적이 없으며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본연의 의무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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