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계대공황에 대한 오해
1-2. 세계대공황의 원인
1-3. 뉴딜정책의 한계
2. 세계대공황의 극복
2-1. 무역정책과 통화정책
[1] 정부의 잘못된 통화 관리
○ 1920년대 미국 정부는 통화팽창정책을 썼음
(1)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은 1921년~ 1929년 중반까지 통화 공급을 60% 이상 늘림
(2) 통화 증가로 이자율이 떨어졌고, 주가가 상승하여 경제가 붐을 이룸
○ 통화팽창 정책을 썼던 이유
(1) 1920년대 초 일시적인 경기후퇴가 오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2) 1차 대전 후 미국 달러 가치가 상승했으며, 영국의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여 약(弱)파운드가 지속되자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2] 후버 정부의 반(反)시장적인 정책
○ 스뭇 -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1) 1930년 6월 후버 정부는 스뭇 - 홀리 관세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킴
(2) 이 법은 외국제품에 대한 수입금수 조치로서, 이로 인해 887개의 관세가 인상되었고, 관세 대상이 3,218개의 품목으로 확대
(3) 미국에서 무역장벽을 높이자 미국에 물건을 팔기가 어려워진 외국 정부들이 보복조치로 미국 제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함
(4) 이로 인해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품목이 미국 농산물. 미국 농부들은 시장의 약 1/3을 잃게 됨.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수만 명의 농부들이 파산하였고, 농업의 붕괴로 인해 지방은행들이 도산하였음. 이것이 은행공황으로 이어짐
[1] 뉴딜의 의미
- 경제회복을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뜻함
[2] 뉴딜정책의 전개
○ 뉴딜 첫해에 루즈벨트는 30억 달러의 조세 수입을 훨씬 초과한 100억 달러의 정부지출을 계획 정부지출 83% 이상 증가 정부채무 73% 급증
○ 1933년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AAA) 제정
[1] 무역정책 ( 보호무역주의의 철폐 )
- 1930년대 세계대공황 시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긴축일변도에 지역간, 국가간 무역차별로 특징지을 수 있는 지역주의화 추세로 공황이 확산, 당시를 풍미하던 경제민족주의와 어우러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인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만연하였고, 이로 인한 차별과 보복의 악순환은 세계무역과 경제를 넓고 깊은 침체의 늪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함.
즉, 공황은 세계화(시장통합)가 후퇴(backlash)할 때 발발
[ 유럽 주요국의 관세율 수준 (1913-31년) ]
- 윤상철 외, “글로벌 금융위기의 구조적 영향과 통상정책에 대한 시사점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9.12.30
- Michael A. Alexander, "Generations and Business Cycles Part II", Safe Haven,
November 06, 2002 (http://safehaven.com/showarticle.cfm?id=1399).
- Layth Matthews, “What Caused the Great Depression of the 1930's?”
(http://www.shambhala.org/business/goldocean/causdep.html)
-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박무성 지음, 한울 아카데미, 2002)
- ‘간결한 세계 경제사’ 론도 캐머런 지음/이헌대 옮김
- ‘대폭락 1929’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이헌대 옮김
- ‘대공황의 세계 찰스’ p. 킨들버거 지음 박명선 옮김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