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용어 – 명성황후 vs 민비
3.명성황후를 다룬 소설들
4.정비석의『민비』에 나타난 명성황후 이미지
5.『대원군전』에 나타난 역사적 오류
6.야설록의『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나타난 명성황후 이미지
7.맺음말
- 유년 시절을 골목대장으로 표현
태생적으로 시아버지에게 질 수 없는 이미지를 생성
"궁인 이씨를 없애버리지 않을 수 없다"
"민 중전의 가슴에 맺힌 운현궁에 대한 원한은 한 날 한 시도 풀릴 때가 없어“
-시아버지와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망국의 원인을 제공
"민 중전은 일본과 수교조약을 맺기는 했어도 그 자신이 신념을 가진 개화주의자는 아니었고, 다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방편의 하나로서 일본과의 화친했을 뿐"
-개화의 주체가 아니라 주관 없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의 개화정책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
"명성황후의 공죄는 별문제로 하고 그녀가 오천 년 한국 역사 중에서 뛰어난 여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녀가 일본의 총검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적어도 36년간 일본제국주의 사슬에 묶여 있지는 않았으리라"
-결국, 정비석의 『민비』는 기쿠치의 텍스트를 받아들여 소설을 썼지만, 시해 사건에 있어서는 민족적 정서에 부딪혀 기쿠치와 반대로 서술하였다.
궁인 이씨와 고종사이에 태어난 왕자 이선을 대원군이 원자로 책봉하려고 한 시도 때문에 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의 대립관계가 시작되었다.
-조선 왕실의 후계자 선정의 전통으로 볼 때, 왕비가 아직 20세도 되지 않았는데 궁인 소생을 원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당시 궁중의 어른인 조대비가 아직 살아 있는 가운데 대원군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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