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력균형의 실패
(2) 집단안보의 실패
2.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재무장이 가능했던 배경
(1) 독일 내적 요인
① 경제적 측면
② 군사적 측면
(2) 독일 외적 요인
① 체임벌린의 독일 유화정책
② 미국의 고립주의
(1) 세력균형의 실패
세력균형이란 국가 간 관계 속에서 ‘어느 한 국가가 압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들은 타국의 능력과 의도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력균형을 통해 타국이 자국보다 우월한 위치로 진입하는 것을 견제하고자 한다. 세력의 균형을 창출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각국이 자국 세력을 증강하고 그것에 의해 대립국과의 균형을 창출하는 방법이 있고 몇몇 국가가 군사동맹을 체결하여 균형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몇몇 국가가 협력하여 군축을 실시하여 새로운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다.
1815년 나폴레옹 몰락이후 유럽 대륙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5대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국가 간 긴장은 각종 국제회의에서 해결되었고 이러한 체제는 소위 ‘유럽협조체제’를 낳았다. 그 결과 ‘빈체제’ 빈 체제(Vienna system, Vienna Settlement)는 빈 회의(1814~1815년) 이후인 유럽의 국제 질서이다. 빈 회의에서 프랑스의 샤를 탈레랑 페리고르가 주장한 정통주의를 기초로, 유럽의 왕정들은 프랑스 혁명 이전 상태를 부활시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신성동맹 등 당시의 열강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국민주의 활동을 탄압하였다.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의 5대 강국이 대외적으로 어느 한 나라가 강성해져서 세력 균형을 깨는 일이 없도록 상호 견제하면서도 강대국 및 약소국에서 위험한 혁명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협조하여 공동 개입으로 이를 탄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 19세기 중반까지는 효과적으로 작동했으나 그 이후에는 강대국들 사이의 작은 전쟁들이 중부 및 남부유럽을 휩쓸었으며 이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어 오던 세력균형이 붕괴되고 말았다.
1866년 발발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과 1870년에서 1872년 사이에 일어난 프로이센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독일은 유럽 대륙의 신흥강대국이 되었다. 독일의 독립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 수상은 신생국 독일의 안보를 위해 기존의 세력균형을 부활시켰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맹체제’가 시작 되었는데, 이는 신중한 외교적 노력에 의해 유지되는 인위적인 균형이었다. 특히 1879년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맺은 양자동맹은 1914년 까지 계속된 독일 외교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 1866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으로 분리된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은 더 이상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었다. 비스마르크 수상은 이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1881년에 러시아를 끌어들여 소위 삼제동맹을 결성하였으며, 이듬해인 1882년에는 강대국을 꿈꾸고 있던 또 다른 신생국 이탈리아를 포섭하여 삼국동맹을 결성하였다. 그 결과 독일은 유럽 대륙에서 경쟁상대인 프랑스를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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