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 한국 좌파정당사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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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정치사] 한국 좌파정당사 - 진보당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진보당의 창당에서 몰락까지

3. 진보당의 평화통일 노선

4. 진보당의 성격

5. 맺음말


본문내용

2. 진보당의 창당에서 몰락까지

전후 복원사업과 관계없이 이승만은 권력추구에 여념이 없었다. 1954년 5·20총선은 권건·경찰 선거였다. 조봉암은 출마 자체를 봉쇄당했고, 민국당의 신익희 등도 권건의 선거방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5·20선거는 자유당과 민국당에 의해 최초로 공천제가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정당정치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독재와 영구집권에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승만이 다른 정치세력을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게끔 방해한 이유로는 우선 대통령 중임제한 조항을 철폐할 개헌정족수를 확보하기위해서가 있을 것이다. 아예 자유당은 새 개헌안에 사인한 자에 한하여 자유당 후보공천을 주었을 정도다. 협박 등 갖은 수를 써 개헌 정족수를 마련했지만, 개헌안은 11월 27일 표결에서 부결된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를 그 유명한 ‘사사오입’의 억지로 번복 통과시킴으로써 ‘종신제 개헌’을 강행한다.

이에 야당인 민국당과 그 외 무소속 의원들은 ‘반독재 민주수호의 기치’ 하에 ‘호헌동지회’를 결성하고 반 이승만·자유당 전선을 결성했다. 진보적 성향의 무소속과 민국당 내 민주개혁파 쪽에서는 조봉암과의 제휴를 요구했고, 민국당의 김성수·서상일 등도 호헌동지회를 내세워 조봉암의 참여를 촉구했다. 조봉암은 호헌동지회가 추진하는 야당 연합전선적인 성격의 당 결성에 찬성하며,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참여할 것을 공언했다.

민국당 등의 보수세력과 조봉암을 위시한 범 혁신세력의 민주신당 결성은 곧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복잡했다. 신당 추진세력은 조봉암 영입문제로 두 파로 갈라지고 만다. 이 두 파는 시일이 지난 후 민주대동파와 자유민주파라고 불리게 된다. 민국당 내의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의 대립은 전적으로 조병옥 등의 완고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신익희와 김성수의 손에 달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김성수는 민주대동의 입장에서 조봉암과의 합작을 보수파에게 종용했고, 보수파도 조봉암이 반공노선을 견지한다고 공적으로 약속한다면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얼마 안 되어 김성수가 사거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자유민주파의 민국당과 타 정치세력은 민주신당 결성세력 내에서 친 조봉암 세력의 입지를 좁히고, 조봉암을 고립시켰다. 결국 자유민주파 중심으로 된 신당은 민주당으로 발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