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은희경 `내가 살았던 집`을 읽고...
「내가 살았던 집」은 중학생 딸을 가진 미혼모가 5세 연하의 방송기자와 세 계절(가을, 겨울, 봄)에 걸쳐 사랑을 나눴던 '공간'을 상징한다. 남자는 여름에 소식도 없이 다른 여인과 결혼했지만 신뢰했던 자기형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다시 그녀를 찾아 아내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욕정을 나눈다. 여자는 칙칙한 관계를 청산코자 마음을 다진 터라 늦가을 밤늦게 여섯 차례나 전화를 시도하는 남자에게 코드를 뽑아버린 채 단절해버린다. 우울해진 남자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취한 채 차를 몰고 귀가 중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죽는다. 이른 아침 여자는 해외출장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조바심 치다가 간신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으나, 정작 그 남자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해외에서 돌아온 뒤였다. 초조를 하며 반항기가 돋아난 딸이 가출해 버린 데다 상처만 남긴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까지 맞게 된 여인은 그 남자가 남긴 생명의 싹을 낙태해버리고 비오는 밤 음주운전으로 그가 죽었던 사고지점을 지나면 '교통사고 사망지역' 이란 붉은 바탕에 흰 글씨가 씌어진 간판을 지난다. 그가 죽은 사고지점이 어쩌면 그녀에겐 자신이 사랑으로 살았던 영혼의 집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그녀는 휴대용 전화를 받으려다가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나들며 차를 빙그르르 돌리는 위험한 순간을 겪는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인생인데도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생존"이라고 말했던 그가 새삼 그녀에게 다짐해주려는 전화였을까. 아니면 그 지점에서 함께 사랑의 저승으로 가자는 그의 유언이었을까.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