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남해회사 버블의 의미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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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제학] 남해회사 버블의 의미와 교훈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A. 남해회사의 출발
1. 설립배경 및 목적
2. 사업의 전환
B. 남해회사의 투기열풍
1. 국채-주식 전환 프로그램의 승인과 주가 상승
a. 로의 시스템과 남해회사
b. 남해계획안의 가결과 국채인수
2. 남해회사 투기열풍
C. 남해회사의 몰락
1. 남해 회사의 몰락
a. 남해회사 주가의 폭락
b. 대공황
2. 영국정부의 구제조치
3. 영국경제에 미친 영향
D. 현대경제에서 일어난 버블 현상
1. 2000년 한국 IT주식 버블의 형성
2. 버블의 붕괴

Ⅲ. 결론

본문내용
그러나 남해회사는 동인도회사 같은 일반적인 무역회사로만 머물지는 않았다. 이미 17세기 말에는 무역과 상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근대적인 금융기관으로서의 ‘잉글랜드은행’이 설립되어 있었다. 런던의 부유한 상인들이 모여 정부가 발행한 120만 파운드의 공채에 응모해서, 그 대가로 공채와 같은 금액의 은행권을 발행함과 동시에 환전, 환어음, 대체, 예금과 같은 은행 업무를 취급하는 은행을 1694년에 설립했던 것이다.
또 그보다 2년 전인 1692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제도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영국 정부는 그 때까지도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 해결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장래에 발생할 정부의 조세수입을 담보로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시작된 민간으로부터 차입하는 국채는, 윌리엄 왕 전쟁(아우크스부르크 동맹전쟁, 1689~1697), 앤 여왕 전쟁(스페인 계승전쟁, 1702~1713)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경비지출이 커지면서 점점 더 늘어날 뿐이었다. 아사다 미노루, 「동인도회사」, p121, 파피에, 2004

국채가 늘어나자 그 이자비용 역시 영국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와의 연결고리가 강했던 남해회사는 무역활동 외에 정부의 국채를 인수하는 일종의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처음부터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해회사는 무역보다는 국채-주식 전환 프로그램을 주 사업으로 한 이익 획득을 시도하였다.

B. 남해회사의 투기열풍

1. 국채-주식 전환 프로그램의 승인과 주가 상승

a. 로의 시스템과 남해회사

남해회사는 설립 당시에 이미 1천만 파운드의 국채를 정부로부터 인수하고 해마다 5%의 이자를 받고 있었다. 1719년이 무역활동이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자, 남해회사는 국채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이게 남아메리카 무역의 장래성에 대해 선전하고 국채를 회사주와 맞바꾸도록 권고했다. 이 계획은 완전히 성공하여 주가가 폭등하면서 남해회사는 액면가와의 차액으로 약 7만 파운드의 이익을 냈다.
이 무렵 파리에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John Law, 1671~1729)가 프랑스의 모든 무역회사(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 등)를 합병해서 하나의 거대한 연합회사를 만드는 계획을 수립하고, 1717년 ‘미시시피회사’를 설립했다. 로는 당시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던 15억 리브르에 달하는 거액의 국채를 전부 인수한다고 선언하였고, 국채를 가진 사람들은 로에게서 받은 돈으로 미시시피 회사 주식을 샀다. 1719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회사주는 급속하게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액면가 500리브르의 회사주는 연말에는 18,000리브르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로의 거대한 시스템은 큰 인기를 끌어 전(全) 프랑스가 말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