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회사 미시시피버블
프랑스의 중상주의 장 바티스트 콜베르 재무관료가 프랑스의 산업기반에 공을 세워놓았다.
콜베르는 프랑스의 빠른 산업발전을 위한 방법으로 수출 증대와 수입 억제, 상선대와 해군력 증강, 생산시설의 보호와 육성등의 시책을 펼쳤다.
콜베르는 위그노를 탄압했지만 무역과 해운업, 조선업에 종사하는 위그노들에게는 차별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콜베르가 1683년 사망하고 1685년 루이 14세가 위그노에 대한 차별을 조건부로 없앤 낭트칙령을 폐지하면서부터 프랑스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로인해 위그로는 빠짐없이 프랑스에서 떠나갔으며 더욱이 짐이 국가다라며 왕권신수설을 믿었던 루이 14세는 사치와 전쟁에 돋을 쏟아부었고 그중에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 등 재정은 악화되었다. 무려 72년 3개월 18일 동안 재위한 루이 14세가 아직 다섯 살인 루이 15세를 남겨두고 1715년 사망했을 때 정부의 채무는 30억 리브르에 달했고 연간 재정수입 1억 4500만 리브르에, 지출 1억 4200만 리브르를 뺀나머지 300만 리브르로는 이자조차 전부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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