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다부동 전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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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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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서론 - 다부동 전투란
본론
1.역사적 배경
2.전투의 경과
3.전투결과 분석
결론 - 전투의 교훈/의의

본문내용
북한군 입장에서는 다부동 일대를 점령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름짓는 것이였기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약 20대(후에 14대 증원)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왔다.
국군 입장에서는 다부동을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시 이는 곧 전쟁의 패배와 나라의 패망을 의미했기에 병력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군과 학도병등 총역량을 동원하여 다부동의 수호를 위해 북한군에 맞섰다.



2.전투의 경과

북한군 3사단의 8,9월 총공세에 맞서 다부동을 지키기 위해 국군 제1사단은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저항선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낙동강 방어 작전 중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다부동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彼我) 간에 유학산전투, 328고지전투, 837고지전투, 674고지전투, 볼링장전투, 가산산성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 뿐 아니라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가운데서 837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병력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필승의 신념과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으로 북한군에 맞섰는데 북한군에 막대한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