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권력
2. 근대성과 종교권력
3. ‘한국적 근대’와 종교권력의 형성
4. 종교권력의 딜레마: 최근의 양상들
5. 맺음말
■ 장석만, "한국의 지식권력3-권력으로서의 한국종교"(2000)
1. 종교 자유의 원칙과 정교 분리의 원칙
2. 따라야 할 모델이 된 개신교
3. 가부장적인 종교 폭력
4. 드러나지 않는 종교 문제
■ 이수인, "1987년 이후 한국시민사회의변동과 개신교"(2002)
1. 시민사회 변화와 개신교의 정치사회적 태도 변동
2. 개신교사회운동을 통해 본 개신교 장의 정치사회적 특성
3. 결론
종교의 자유가 중요시되는 배경에는 ‘개인의 내면성에 대한 가치 평가’와 ‘국가 권력의 간섭 배제’ 때문이다. 정교 분리의 원칙은 종교적 신앙의 본래 자리가 개인의 사적 영역이며, 국가 권력의 작동 영역인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데 목적이 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종교적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이 공통되게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종교적 신앙은 사적 영역에 위치하며 국가 권력도 개인의 신앙을 침해할 수 없다. 그리고 서구의 타자는 주로 ‘종교적 타자’로 종교를 통해 타자를 파악했다. 동시에 종교는 서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준이자 동시에 모든 인류를 ‘문명’으로 이끄는 보편적 지표였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가 이루어져있지 않은 사회는 ‘미개’사회로 간주했고, 교화시키는 것이 ‘백인의 의무’였다.
19세기 말 조선의 경우 천주교가 ‘예(禮)’를 어지럽힌다하여 경계했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의 요구로 개신교와 천주교의 자유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서구 종교를 신앙으로 삼는 것은 관습으로의 해방,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고, 조선 사람들은 천주교=프랑스 종교, 개신교=미국 종교라고 인식하면서 서구 열강의 힘과 서구 종교를 일치시켰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관리들의 횡포와 난리로부터 피난한다는 마음으로 개종했다. 또,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기보다 근대적 민족 국가의 생존을 위해 취해야 할 의무라는 측면이 강했다. 서양 종교 세력과 조선 정부는 제도적 종교 집단과 국가 권력 사이의 상호 지분 인정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2. 따라야 할 모델이 된 개신교
조선 사람들에게 종교는 ‘문명’의 길이었다. 부강한 나라들이 개신교를 믿고 있으므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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