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은 사회변동에 순응하는 개혁정치를 실시하여 역사발전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그 과정은 군신관계를 저버리고 군령을 위반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위화도 회군은 역사발전에 순응하는 정당한 역사적 행위인가 아니면 단순히 폭력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쿠데타인가 이제부터 알아 보겠다.
위화도 회군은 최영의 요동정벌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고려는 그 당시 권문세족의 농장 확대, 양인들의 파탄, 불교계의 타락, 왜구·홍건적의 침입, 중국 정세의 변화 등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정치세력인 신흥사대부는 개혁정치를 지향했다. 이들은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비록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실패로 끝났지만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공민왕 암살 후 우왕이 왕위에 오르자 다시 권세가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 때 권력을 장악한 최영과 이성계는 외적과의 싸움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우왕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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