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인물 설명
2.2 리더십 설명
2.3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 설명과 사례
2.4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 비교
3. 결론
참고문헌
한 시대의 리더가 발휘하는 리더십이 그 국가와 민족의 영광과 치욕을 결정하였다. 이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확연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렇듯 국가 형성에 있어 군주의 리더십은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 차이가 위와 촉의 미래를 결정하였다고는 보기는 어렵지만 적지 않은 영향은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영향으로 인하여 조조는 간웅으로 치부하고 유비는 성군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므로 조조의 리더십과 유비의 리더십을 그 책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두 군주의 리더십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물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본 보고서에서는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을 카리스마 리더십과 감성 리더십 관점에 적용하여 비교하면서 현대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리더십을 찾아보고자 한다.
2.1 인물 설명
1) 조조 (155~200)
조조는 자는 맹덕(孟德)이며 지금의 한휘성 지역인 패국 초현에서 태어났다. 본래 가문은 하후씨였으나 생부인 조숭이 환관 조등에게 양자로 들어가며 환관가문인 조씨가문에서 자라났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때 두각을 나타냈고, 동탁을 토벌하면서 대궐을 장악했다. 이후 수많은 전쟁을 통해 여포, 원술, 원소, 유표 등을 평정하여 중국 북부를 통일한 후 헌제로부터 위공국을 수여받았다.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패한 후 북방을 안정시키는데 노력했다. 문무를 겸비해 상황 판단이 빠르고 휘하에 유능한 모사와 용맹한 장수들이 많았으며, 66세의 나이로 낙양에서 병사하였다. 이후 조비는 조조의 직위를 계승하고 무왕의 시호를 바치고, 곧이어 헌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은 후 조조를 무제로 추대하며 위나라가 건국되었다.
이임정, 윤관호(2006) “카리스마적_리더십과_SL_Ⅱ의_연계성에_관한_연구”
예지은(2010) “긍정에너지를 끌어내는 힘, 감성리더십”
최우석(2007) “삼국지 경영학”
박광희(2008) “리더십, 삼국지에 길을 묻다.”
나채훈(2004) “조조와 유비의 난세 리더십”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