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복지는 기독교가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기독교를 포함한 민간복지에서 공공복지로 그 책임이 전가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관과 민이 합리적인 협조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의 과정에서 민간복지의 활동영역이 축소되거나 기능이 경시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 속에 민간 복지가 더욱 발전되고 성숙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사회복지정책의 시작은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이미 봉건 농업사회를 지나 상업 및 수공업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가난의 시대라고 보아야 한다. 가난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이었다고 한다. 1498년 푸라이버그 지역의 예를 들면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경작자의 약 10%가 구걸로 생활을 유지하였으며 이러한 생활고는 더욱 증가하여 16세기에는 수공업자의 거의 절반이 자선구호금 지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주택사정은 아주 나빴으며 1460년의 류벡시의 예를 들면 25%의 주민들이 아주 비위생적인 조건속에 살았다. 또한 집이 없는 사람은 다리 밑에 또는 마구간 옆의 밀볏짚 보관소에서 잠을 잤다. 중세의 구호체계는 지급과 시설에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호금은 헌금하기를 원하는 자선가가 직접 현금 또는 현물을 나누어 주거나 아니면 교회나 수도원에 이를 위임하였다.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구호금이 사회복지적인 차원에서 또는 경제적인 면에서 클라이언트를 돕는 것이 그 동기라기보다 기독교인으로서 명령 순종이 더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는 사람 스스로의 영혼구제가 일차원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배의 원칙은 빈곤자의 곤난 정도에 의하지 않고 일정량의 돈이나 물건을 교회나 수도원 또는 기타 다른 재단에서 획일적으로 분배하였다. 재단 상호간에 협의도 없었으며 계획적인 분배의 원칙도 없었다. 중세의 구호체계는 그 때문에 단지 아주 작은 복지 부분에서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함께 여기에는 아울러 통제의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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