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고 나서
신영복 선생을 20년동안 감옥에서 보내야했던 원인, 통혁당 사건에 대해 궁금하여 조사해 보았다.
60년대 초 과거의 반봉건적인 식민지경제가해체되었으나 독립후의 ‘민족경제’가 새로운 자본주의적 기초에서 안정적인 재생산기초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중들의 경제적 불만이 상존하게 되고 그것에 일정한 정치적 계기가 주어지면 혁명적 운동이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독특한 경제적 모순을 배경으로 하여 통혁당이 건설되는 것이다. 통혁당은 한일회담을 둘러싸고 분출되는 이러한 반정부의식과 투쟁의 전개를 통일적인 반체재투쟁으로 고양시키려고 하는 문제의식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한일회담은 통혁당과 같은 혁명적 조직의 건설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조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60년대 중반기의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적 사회변동과 사회이동이 본격화되는 초기적 상태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자본주의화는 일반적으로 그에 수반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증대시킨다. 그것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부의 절대량이 증대함과 동시에 분배 상태가 양극화되기 때문이다.
통혁당은 혁명적 인자를 발굴하여 육성, 보존하는 사업에 역점을 두었으면서도 여타의 다양한 사업을 비록 낮은 수준에서나마 계획, 시행하기도 하였다. 즉 《청맥》의 발간, ‘학사주점’의 인수 및 운영, 기층 민중운동에 대한 접근, 무장투쟁을 위한 준비 등을 들 수 있다.
2. 유영구 「통일혁명당」《월간 중앙》 1992년 2월호
3. 『80년대 사회운동논쟁』 (한길사,1989) 편진부 편, 「통일혁명당」 (나라사랑,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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