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 플라자 합의 정의 플라자 합의 소개 플라자 합의 조사
- Plaza Acc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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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플라자 합의란 무엇인가?
2. 본론① : 일본은 어째서 플라자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는가? (플라자 합의 前)
3. 본론② :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버블경제에 대해서.. (플라자 합의 後)
4. 본론③ : 플라자 합의 25년 만에 재연된 환율전쟁 (중국의 경우)
5. 결론 : 플라자 합의가 우리나라에 미치게 될 영향력
1. 서론 : 플라자 합의란 무엇인가?
1985년 9월 22일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 5개국 중앙은행 총재가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며 이것이 순조롭지 못할 때에는 정부의 협조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한 것을 플라자 합의라고 말한다.
1978년 2차 석유파동을 겪은 미국은 1980년 초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인 소득세를 대폭 삭감하고 재정지출을 유지함으로써 대규모 재정적자를 발생시켰다. 여기에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 달러가치는 높아지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자 플라자 합의를 유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회의에서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절상시키는 시장 개입을 공동으로 단행한다는 합의를 했다. 이 합의로 당시 1달러당(월평균) 260엔대를 보이던 달러화는 약세로 반전, 1987년 말에는 달러당 120엔까지 평가절하 되었다.
이 사건은 나중에 일본의 버블을 일으키는 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통화의 강세로 수출의 급격한 하락을 걱정했다. 내수경기를 일으켜 불황을 막고자 저금리정책을 채택했다. 그 결과 국외에서 유입되는 엄청난 달러에 의해 국내 유동성이 폭발하기에 이르렀고 주식과 부동산의 트윈버블이 발생하게 되었다.
2. 본론① : 일본은 어째서 플라자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는가? (플라자 합의 前)
85년 플라자합의는 일본의 버블경제를 부추기는 합의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일본은 어찌하여 자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달러강세를 도와주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아야하겠다. 플라자 합의는 결국 일본의 화폐가치 상승으로 끝났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플라자 합의가 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하락해 버리면 달러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던 독일이나 여타 수출흑자국가들이 달러를 금이나 기타의 것으로 변경하여 보유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세계 전체적으로도 그러한 위험 때문에 달러화의 강세에 대해 유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었다. 특히 그 주요원인은 미국의 산업 전반으로 흘러들어오는 일본의 상품들이었는데, 만약 엔화가 저평가 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것에 따라서 결국에는 미화의 가치도 하락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일찍이 일본에 대해서 엔화가치를 상승시킬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일본은 탐탁지 않았고, 일단은 버텨보고 이론적으로 쌍둥이 적자이론을 가지고 온다. 일본은 이론적인 배경을 상실하고 결제학적으로 반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빠지게 된다. 결국 미국은 일본에 대해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강세를 요구하면서 수많은 협박을 하게 된다. 사실상, 그 당시에 일본의 수출라인은 대부분이 미국시장이었고, 다른 국가들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만약 수출에 대해 기타 무역장벽을 개설하여 일본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면 스스로 환율을 상승시키는 것보다 더 큰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어, 이에 따라 일본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직접적인 무역장벽을 거는 것과 환율을 상승하게 하는 것은 결론적, 경제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 관세를 매겨 버리게 되거나 수량을 통제하게 된다면 큰 타격이 오므로, 환율을 하락시키고 개별 기업들이 환율하락에 따른 위험을 가격전가의 방법 등을 통해 충격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우위의 선택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 자체도 미국 시장의존도가 꽤 높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달러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면 어차피 타격이 크게 오는 것이 분명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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