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쇠퇴과정
플라자 합의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특히 1978년의 제2차 석유파동은 미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줘 70년대 미국은 깊은 경제 불황에 빠져 있었다. 1980년대 초,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개인소득세를 대폭 감면하는 내용의 레이거노믹스 경제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이 정책은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두어 물가 상승률과 실업율이 대폭 감소하였으며 무역 적자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방대해졌으며 결국 레이건 정부는 1985년 9월 2일에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회담에 압력을 넣어 달러의 평가절하와 독일 마르크화,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플라자 합의를 발표하였다. 플라자 합의가 발표되자 환율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플라자 합의 후 일주일 만에 독일 마르크화는 약 7%, 엔화는 8.3% 절상되었지만 달러 가치는 급속도로 하락하여 1987년의 달러 가치는 1985년의 약 70%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미국은 강력한 수출경쟁력을 갖췄지만 독일과 일본은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거품 경제
지난 30년동안의 장기 호황은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플라자 합의 전, 엔화 가치는 실제보다 훨씬 저평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수출 업종은 호황을 누렸으며 경제 성장률은 평균 5%대를 유지하였다. 이런 호황경기에서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지속해 왔다. 또한 저축 억제정책으로 인한 저금리에도 불구, 매달 엄청난 액수의 돈이 은행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은행들은 대출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였다. 플라자 합의 후 수출기업들이 환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애로를 겪자 일본 정부는 금융완화법을 제정하여 기업들이 돈을 더 쉽게 빌릴 수 있도록 하였다. 무역흑자로 인해 유입된 막대한 외화가 자국내에서 엔화로 바뀜으로써 자금의 유동성은 지속적으로 더욱 풍부해졌고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돈이 시장으로 유입되지만,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가들은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부동산가격 급등과 주식시장 버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유동성 자금의 증가는 부동산가격의 상승을 불렀다. 또한 미국경제의 불황과 유럽 동구권 붕괴로 인한 유럽의 경제·사회적 혼란이 그렇지 않은 일본과 대비되어 해외의 투기자금이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일본의 부동산가격은 급등을 하기 시작하였고, 부동산가격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부동산의 가격급등은 "땅값은 반드시 오른다"라는 부동산불패신화를 탄생하여 투자자들은 부동산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란 믿음 하에 부동산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급등으로 인해 막대한 차익을 챙긴 투자자들은 또 다른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한편 소비도 대폭 늘려 이는 잃어버린 10년 전 소비열풍으로 이어졌다. 시중에 넘쳐나는 자금유동성은 은행, 기업 등 자금을 가진 자금운용자들에게 고민을 안겨주었고, 특히 플라자합의 후 엔화의 환율 인하로 인해 수출경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동산 주식 이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었다. 은행의 돈들이 부동산투자와 주식투자 자금으로 지속적으로 대출되면서 부동산가격거품과 주가버블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런 선순환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진행 과정
당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아무리 막강했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엔화환율은 수출경쟁력에서 일본기업들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기업들은 서서히 해외에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투자처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부동산보다 저렴해 보이는 해외 부동산과 자산들에도 투자하게 되었다. 너무 가파르게 오른 부동산 가격과 주식도 투자가치에서 매력을 잃게 되고 가격 조정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은 해외에서 들어오던 무역흑자의 유입량이 줄어들고, 시중의 돈들도 해외로 발길을 돌려 투자처로써의 매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1980년대 호경기는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득증가로 지속적인 소비가 가능했었는데, 이제 자산 가격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그 소비까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 기업들의 불황은 심화하게 되었다.
극복 과정
엄청난 자산버블에는 그 댓가가 따르게 된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그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토건업자들과 밀착성이 강한 보수정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으며 개혁을 위한 시간만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산버블이 해소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또, 이 경기부양과정에서의 일본정부의 재정적자는 크게 악화되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경제체질을 약화시키고 성장가능성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2000년대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진정한 고강도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개혁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아 고이즈미 정권 후반기에 경기는 서서히 살아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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