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생애 》
드라이커스는 애들러의 초기 학생 중의 하나였고, 비엔나에 있는 아동지도센터에 참여한 동료이다.
1897년 - 비엔나에서 출생하였다. 비엔나 의대를 졸업한 후 가족 상담과
정신치료요법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다.
1937년 - 시카고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센터에 부모 상담센터를 처음으로 설립하였다.
시카고의 초기 몇 년 동안의 역사는 진실로 흥미를 끄는 일로서 드라이커스가 극복 해야만 하는 정신분석학파 단체에 의해 반대 운동을 포함하여 무서운 방해 운동들을 계몽하는 것이었다.
1939년 - 브라질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결국 시카고에서 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드라이커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부모교육, 결혼과 가족상담, 교육 분야 그리고 정신(심리) 요법의 실시 등 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7년 - 오리건 대학교의 교육대학 학부에 실시한 하계수업의 결과를 그가 초기에 이룬 교사 교육에 대한 획기적인 발전으로 생각했다.
드라이커스는 레이몬드의 초청으로 오리건에 갔었는데, 그의 많은 추종자들은 처음으로 애들러학파 모델을 알게 되었다.
1958년 - 부모기의 도전을 출간하고 딩크메이어와 함께 아동의 학습능력
격려법을 출간 하여 부모가 자녀에게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희망 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드라이커스의 상담소는 민주적인 가족모임이나 부모교육에 역점을 두고 운영되었는데 가족심리치료를 정신건강 차원에서 중요시하였다.
이와 함께 결혼생활의 도전을 출간하여 부부생활의 질적인 향상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1972년 - 그는 죽음을 맞기까지 애들러학파의 이론과 실천을 발전시키고 확 장시키는데 열의를 보이는 한편 애들러학파 운동을 드라이커스 학파로 새로 이름이 붙이거나, 또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창시자인 애들러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그의 제자들에 대해 단호히 맞섰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