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작가의 생애와 문학 활동
함형수는 191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였다. 1935년 함흥고보 재학시절 학생운동의 주모자로 일시 투옥된 바 있었으며, 그로 인해 퇴학을 당했고, 같은 해 다시 중앙불교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갔다. 중앙불전에 입학한 이래 그는 일찍부터 매스컴에 습작시를 발표하였는데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 「마음의 단편」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중앙불전에서 서정주, 김동리 등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서로 뜻이 통해 함께 어울려 다녔다.
이를 계기로 1936년, 서정주와 함께 우리 시사의 대표적 동인지의 하나인 『시인부락』을 결성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벌였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실적은 미미한 것이었다. 고작 서정주와 교외를 방황하거나 이상을 찾아본 정도가 교류 범위였고, 작품도 『시인부락』 이외엔 비슷한 동인지 『자오선』에 발표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그러다가 생활이 어려워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그만두고, 그는 만주로 건너가 도문의 소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194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음이 당선되어 정식 등단의 절차를 거치기도 하였으며, 만주에서도 교원생활을 하면서 시작활동을 계속하여 『만주시인집』, 『재만조선시인집』등에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해방 직후 1946년 북한에서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살았을 때 시집은 출간하지 못했고, 그의 습작기 작품으로 「마음의 단편」 등 8편 외에 동인지 『시인부락』과 『자오선』에 「해바래기의 비명」, 「형화(螢火)」, 「홍도(紅桃)」, 「그 애」, 「무서운 밤」, 「조개비」, 「해골의 추억」, 「회상의 방」, 「유폐행(幽閉行)」, 「소 있는 그림」, 「부친후일담(父親後日譚)」, 「성야(星夜)」, 「구화행(求花行)」, 「신기루(蜃氣樓)」, 「교상(橋上)의 소녀」, 「자전거상(自轉車上)의 소년」, 「어떤 애사략(愛史略)」 등 40여편 가량이 그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밖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마음」과 「개아미와 같이」 등이 있다. 내 무덤 앞에 빗돌을 세우지 말고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해바래기의 비명」은 그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Ⅱ. 작가의 경향
1. 습작기 - 비애와 우울의 정조, 공포의 내면의식
방랑벽이 있었고 어머니를 도끼로 상처내고 투옥된 후 옥사한 아버지,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 등 어려운 가정적 환경으로 함형수는 자기 유폐의 형태로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습작기 시들은 화자의 내면의식의 세계가 비애와 우울의 정조로 형상화되어 있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비애와 우울의 정조가 한층 심화될 때는 공포로까지 이어졌다. 김선학(1986), 함형수 시 연구, 동국대학교, p.152
2. 『시인부락』 동인시기
1) 유년 체험의 시적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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