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옹전 _ 민영감의 ‘말’에 담긴 의미에 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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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옹전 - 민영감의 ‘말’에 담긴 의미에 대한 사색
허투루 내뱉지 않은 한 마디 말에 담긴 의미는 매우 크다. 그 말 한마디가 인생을 좌우하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짧은 말 속에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고 했던가.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이어나가다보니, 순간 기억나는 글이 하나 있었다.
‘민옹전(閔翁傳)’은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처음 접한 고전 작품이다. 1757년(영조 33)에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전기(傳記)이며 실존 인물인 민유신(閔有信)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몇 가지 일화와 작자 스스로 민유신을 만나 겪었던 일들을 엮고 뇌(柰) : 죽은 사람의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글
뇌를 붙인 전기이다. ≪연암별집(燕巖別集)≫ 에 실려 있다. 박지원은 민옹전의 창작경위에서 “금년 가을에 나는 병이 심하나 민옹을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민옹과 주고받았던 은어(隱語) · 골계 등을 엮어 을 짓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민옹이 골계에 의탁하여 풍자한 것이 세상을 비웃는 공손하지 못함이 있다. 그러나 경구(警句)를 써서 분발한 것은 게으른 이들을 경계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에 을 썼다.”고 서술하였다. 이는 문학의 효용에 대하여 말한 것으로, 민옹의 희언(戱言)이 단순히 희언으로 그치지 않고, 그 속뜻이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음을 증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희언 속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민옹은 박지원에 의해 초청되어, 같이 온 손님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귀신을 보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에 민옹은 어두운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밝으면 사람이 되고, 어두우면 귀신이 되는 법이라오. 지금 당신은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밝은 곳을 살피고, 얼굴을 숨긴 채로 사람을 엿보았으니, 어찌 귀신이 아니겠소.”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살아있는 사람은 ‘양’, 귀신은 ‘음’이라고 했던가. 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밤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믿고,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가 아닌가. 민옹이 한 말은 이러한 기본 바탕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도 든다. 보통 귀신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옹은 이 ‘부정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를 사람에 투영하여 풍자한 것 같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살피며, 얼굴을 숨긴 채로 사람을 엿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존재. 제일 먼저는 ‘도둑’이 떠오른다.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도둑은 너무 쉽다. 좀 더 추론해보고자 당시의 ‘언급 배경’을 참고해보자. 작자인 박지원과 실존 인물인 민유신이 살았던 때는 조선 후기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후의 후유증으로 사회의 신분 질서가 동요되기 시작하였던 때이다. 부유한 평민층이 많이 나타나, 국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평민에게서 돈을 받고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시켜주었고, 관리들도 직권을 남용하여 벼슬을 팔거나 승진을 도와주는 등의 부정을 일삼았다. 당시의 지배층은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고, 명분만을 위하며 부패가 심했다. 이러한 시대에 민노인은 유능한 재주와 포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무반(武班)계통이라는 이유로 그 뜻을 펼 수 없어 무능한 존재로 평생을 살아갔던 인물이다. 바로 여기에서 민노인의 ‘귀신’이야기에서의 ‘귀신’이 어떤 부류를 칭하는지에 대해 보다 확실한 답을 내릴 수가 있다. 어두우면 귀신이 되는 법이란,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며 온갖 허풍을 떨면서 뒤로는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던 당시 관료사회의 지배층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밝은 곳을 살피고 얼굴을 숨긴 채 사람을 엿본다는 것은 뒤로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눈치를 살피고 그 사실을 숨기려는데 급급했던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다. 아마도 민옹 자신은 큰 뜻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펴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데 비해, 훨씬 됨됨이가 못한 이들 즉, 부정적인 존재들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것이 원통하고 분했을 터이다. 그리하여 이를 날카로운 비유로 풍자했던 것이다.
또 민옹은 황충에 대하여 “이 따위 조그만 벌레를 가지고 걱정할 게 무어람. 내 보기엔 종로 네거리에 한길 가득히 오가는 것들이 모두 황충일 뿐입니다. 키는 모두 일곱 자가 넘고, 머리는 검은 데다 눈은 빛나지요. 입은 주먹이 드나들 만큼 큰 데다 무슨 소린지 지껄여 대고, 구부정한 허리에 발굽이 서로 닿고 궁둥이가 잇달아 있습니다. 이놈들보다 더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놈들이 없다우. 내가 그놈들을 잡고 싶은데, 큰 바가지가 없는 게 한스럽구려.”라고 말했다. 이는 사람을 황충으로 비유하여 묘사한 것인데, 묘사 자체에도 풍자가 담겨있다. 입이 주먹이 드나들 만큼 큰 데다 무슨 소린지 지껄여 댄다는 것은 바른 말은 하지 않고 제 입만 생각하며 게으르고 말만 많은 사람들, 특히 양반층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구부정한 허리에 궁둥이가 잇달아 있다는 표현도 민옹이 묘사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비판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다는 것은 바로 이들이 무위도식하며 하는 일 없이 농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실태를 말하고 있다.
신선(神仙)을 보았냐는 질문에 민옹은 “집이 가난한 자가 바로 신선이라오. 부자들은 늘 속세를 그리워하는데, 가난한 자는 언제나 속세를 싫어하니, 속세를 싫어하는 게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소.”라고 대답하였다. 무언가 모순인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이치에 맞는 말이다. 당시 사회에서의 부자들은 대개가 이미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더욱 많은 세속의 부와 명예를 얻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반면, 가난한 자들은 먹고 살기조차 힘든 세상살이가 싫을 수밖에 없었고,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거나 떠돌이 방랑민의 삶을 택하는 등 세상과 등지고 사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신선이라는 존재와 가난한 자는 성격상 서로 통하기 때문에 같은 대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선(神仙)’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선이란, ‘도(道)를 닦아서 세속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상상의 사람.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되지 않고, 고통이나 질병도 없으며 죽지 않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이 정말 자연을 벗하여 살고 고통이나 질병이 없는 사람들인가. 실제로는 그 반대가 아니었을까. 이들은 자연을 벗하여 산다기보다는 세속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택한 삶이었을 테고, 반복되는 힘든 생활의 고통을 겪으며 질병에 쉽게 노출되었던 환경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민옹은 이들은 신선이라 했는가. 나는 민옹의 의도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사회에서 핍박받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힘들고 고된 세속을 잊고 자연 속에서 고통과 질병 없이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곧 신선과 같은 존재로 그들을 묘사하였던 것이고 진짜 신선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염원하면서 한 말이 아니었을까 말이다.
누군가가 민옹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민옹은 대답했다. "나 자신보다 더 두려운 건 없다우. (생략)." 이 말에 대하여는 긴 풀이가 필요 없다. 민옹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치를 모든 이들에게 확장시키고 있다. 성인마저도 스스로를 두려워했다는 말을 통하여 하물며 평범한 우리들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그리고 이는 당시의 지배층에 대하여 훈계하고 싶었던 의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민옹은 양란을 거친 후에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에도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고 나라를 돌보지 않는 무리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다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사로잡혀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과 그 사회에 까지도 해악을 끼친 것이라고 보았다.
민옹이 ‘불사약’에 관하여 남긴 명언도 있다. 아무리 민옹이라도 불사약은 결코 보지 못하였을 거라는 말에 "이거야말로 내가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소? 큰 골짜기 굽은 소나무에 달콤한 이슬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든 지 천 년 만에 복령(茯笭)이 되지. 인삼 가운데는 신라의 토산품이 으뜸인데, 단정한 모양 붉은 빛에 사지가 갖추어진 데다, 쌍갈래로 땋은 머리는 아이처럼 생겼지. 구기자가 천년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우.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약을 먹고는 백 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숨결이 가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 이웃집 할미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 탄식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