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공리주의 이론에 관하여
(1) 공리주의(Utilitarianism, 公利主義 또는 功利主義)의 출발점
* 칸트의 의무론과 더불어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니는 규범 윤리학의 체계 중의 하나인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즉 어떤 행위의 결과가 추구하는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그 행위는 옳은 행위이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그른 행위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 결과나 모든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 결과가 좋다면 그 행위는 옳은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목적론적인 윤리설에서는 옳고 그름이 좋고 나쁜 결과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의무론적인 윤리설에서는 어떤 행위를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 것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의 종류이다. 즉 어떤 행위가 모든 도덕적 행위자가 행해야 하는 의무에 속하는 것일 경우 그 행위는 옳지만 의무에 반하는 것일 경우 그 행위는 그르다. 의무론적인 윤리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은 앞서 설명한 칸트의 윤리설이라면 목적론적 윤리설의 전형은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 전반적으로 영국 경험론의 철학자들은 윤리학의 측면에서도 인간의 경험 안에서 도덕적 가치의 근거를 발견하는데 전통적으로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성립된 윤리적 이론으로 쾌락주의(hedonism)를 들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한다’라는 경험적 사실로부터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다’라는 기본적 가치를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여야만 한다’라는 명제에 도달하는 것이 쾌락주의가 등장하는 일반적 사고 과정이다. 넓은 의미에서 공리주의도 쾌락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주의 또한 행위의 결과를 통해서 그 행위를 판단하려고 한다. 즉 어떤 행위의 결과가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좋은 행위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행위는 나쁜 것이 된다. 물론 경험론에 근거한 모든 철학자들이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의 판단하는 한 가지 기준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행위의 결과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행위 자체만 놓고 볼 때 그 행위가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행위를 좋고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 행위의 결과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론적 윤리설을 보다 엄밀하게 구성한 체계로 등장한 것이 공리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인물로는 벤담과 밀을 들 수 있다.
(2)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 벤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은 인류를 두 군주, 즉 쾌락과 고통의 지배 하에 두었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이 두 요소이다. 한편으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오직 이들의 지배에 달려있다. 그들은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고 사고하는 것 모두를 지배한다. 이 두 요소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오직 이러한 예속을 증명하고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이 두 요소의 제국으로부터 단호히 떠나는 척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은 항상 이 제국에 예속된 채로 남을 뿐이다.’ 이를 통하여 벤담은 우선 쾌락과 고통이 윤리학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임을 주장하며 다른 개념들은 쾌락과 고통을 가지고 정의하거나 쾌락과 고통으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에 따르면 옳은 행위란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감소에 기여하는 행위이며 그른 행위는 이와는 반대로 고통의 증가와 쾌락의 감소를 낳는 행위이다. 그리고 행복은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감소 상태 또는 그것을 보고 우리가 느끼는 내적인 심정이며 불행은 고통의 증가와 쾌락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는 우리가 항상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고 노력하며 우리의 모든 행위가 쾌락을 산출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한다. 벤담은 윤리학이 모든 인간이 항상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 한다는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전개되어야만 하며 이런 의미에서 윤리학이란 어떤 행위와 관련해서 이해관계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을 산출하는 일종의 기술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서 행복이란 당연히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벤담은 쾌락, 고통과 관련해서 정의되는 이러한 행복이 누구나 바라는 유일한 목적이며 이 행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서 행위의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도출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행위의 도덕성, 즉 행위의 선악 여부는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판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행위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산출하는가에 따라서 선악이 결정된다. 즉 어떤 행위가 쾌락의 증가나 고통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행위는 선한 행위이다. 반면에 어떤 행위가 고통의 증가와 쾌락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행위는 악한 행위이다. 특히 벤담은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결과가 고려되지 않은 행위 자체만으로는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를 구성하는 다른 여러 요소들, 예를 들면 행위의 동기, 결단, 의도 등의 요소 또한 행위의 결과와는 직접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벤담은 주장한다. 특히 그는 칸트와 같이 내면적인 심정이나 동기를 도덕성의 기준으로 채택하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내면적인 심정과 동기는 결코 확인이 불가능하며 얼마든지 행위자가 자신의 심정이나 동기를 속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개인이 마치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자신의 동기를 솔직하게 밝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행위에 대한 평가는 결국 경험적으로 드러나며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를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벤담에 있어서는 쾌락과 고통의 측정, 즉 각 행위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쾌락과 고통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며 이것이 곧 벤담의 공리주의의 핵심적 부분을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벤담은 이른바 ‘행복 또는 쾌락 계산의 계산법’(felicific or hedonistic calculus)이란 것을 제시하며 이를 통하여 일곱 가지의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이 일곱 가지 기준이란 쾌락의 강도와 지속성, 확실성과 신속성, 다산성과 순수성 그리고 쾌락의 범위이다. 이들 중 강도와 지속성은 현재 느끼고 있는 쾌락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며 확실성과 신속성은 미래의 쾌락을 예측할 경우에 적용되는 기준이며 다산성과 순수성은 쾌락의 유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쾌락의 범위는 어떤 행위의 결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쾌락을 주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쾌락의 계산법에 있어 주목해야 할 점은 쾌락이 오직 양적으로만 고려될 뿐 질적인 차이는 무시되거나 질적인 차이도 양으로 환원하여 수량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를 내세운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사상의 특징인 동시에 한계점으로도 지적된다. 벤담의 뒤를 이는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쾌락을 오직 양으로만 판정하는 것에는 강력히 반대하여 쾌락의 양만을 고려하는 벤담의 이론은 ‘인간이 아니라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각자가 느끼는 복잡하고 다양한 쾌락과 고통의 정도를 일곱 가지의 기준으로 모두 평가할 수 있는지 또는 이 기준들 사이에 상충과 대립이 발생할 경우(예를 들면 행위들의 결과가 강도는 높지만 지속성은 없는 쾌락을 산출하는 경우와 강도는 낮지만 오래 지속되는 쾌락을 산출하는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쪽을 택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많은 의문이 제기되지만 벤담 자신은 이러한 일곱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행위의 결과를 충분히 수량화하여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기준을 제시한 후 벤담은 그의 이름을 윤리학사에 남게 한 유명한 원리 두 가지를 제시한다.
(1) 행위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행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이다.
(The test of right and wrong is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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