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현실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투쟁 김지하의 ‘빈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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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현실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투쟁 김지하의 ‘빈 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실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투쟁( 김지하의 ‘빈 산’)≫
지금 학교에 민주화를 위해서 시위를 하는 문화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본다. 시대가 바뀌어 취업과 자신의 성공을 위한 치열한 승부를 겨루는 장으로 대학 문화가 바뀌었다. 월드컵 16강을 염원하는 함성이 메아리칠 수 있는 것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민주화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김지하를 빼 놓을 수 없다. 김지하같이 그 시대에 모순을 저항하는 한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힘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시인의 삶과 시에서 보인다. 이 김지하 시인의 빈산이라는 시를 사회 문화적 비평의 방법으로 보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김지하라는 시인에 대해서 알아보고 김지하 시인이 이 시를 썼을 당시의 시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김지하는 원주중학교와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다닐 때 4·19혁명, 6·3사태 등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1970년대의 문학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정치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1970년 담시(譚詩) 〈오적 五賊〉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투옥되었다. 1974년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다음해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가 석방된 다음달에 다시 체포되었다. 전 세계의 주목 속에 오랜 재판과정을 거쳐, 앞선 무기징역에 다시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6년간의 옥살이 끝에 정권이 바뀌자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 뒤로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면서, 그리스도교사상·미륵사상·화엄사상·선불교·기(氣)철학 등의 여러 사상들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독특한 생명사상을 펼치거나, 그에 따른 생명운동을 벌이는 데 힘쓰고 있다. 시에서도 정치적 경향의 시보다는 주로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쓰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민주화를 외치던 목소리는 생명사상을 펼치고 있지만 민주화를 외치던 목소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김지하 시인이 있는 것이다.
빈산은 창작과 비평에 1975년에 쓰인 시이다. 이 시를 쓴 시대를 1970년대라고 본다면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1970년대는 박정희와 군부의 독재시절이었다. 박정희가 말하는 것이 바로 법이었던 사회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투쟁과 이를 탄압하기 위한 군부의 가혹한 탄압으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시대를 황폐하게 만든 시기였다. 이 시대의 김지하 같은 저항시인들의 활동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제 김지하 시인의 시 빈산을 살펴보겠다.
빈산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