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문학 활동
김기림은 1908년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에서 출생하였다. 만 평 가까운 큰 과수원을 운영했던 부유한 집안 덕에 학업에 있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보성고교 재학 중 둔종이 발생하여 3학년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명교중학 4학년으로 편입학하고 일본대학에 입학한다. 이 때 그는 당시 일본 문단에서 관심을 끌고 있던 ‘서구 모더니즘의 사조’를 접하게 된다.
1930년 초, 귀국 후 조선일보 기자로 지내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게 되었다. 시〈가거라 새로운 생활로>(1930), (1931)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지주의에 관한 단상(斷想)인 (1931)을 평론계에 등단하고 그 뒤 주로 시창작과 비평의 두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순한 친목인 모임이었던 구인회는 점차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론을 우리나라 문단에 도입하여 초기 한국적 모더니즘 문학의 구심점 구실을 하게 된다. 문학적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미적 가공기술의 혁신과 언어의 세련성을 추구했다.
에 가담하면서 이상과 친한 사이로 지냈다. 이 시기에 시와 시론을 다수 발표하여 전 생애 중에서 1933~35년도까지의 작품연보를 보면, 김기림의 작품 활동은 양적으로 엄청나다. 『태양의 풍속』의 시편들이 1930~34년도까지의 작품들로 엮어졌고, 『기상도』의 시편들이 1935년도 한 해에 쓴 것이고, 『바다와 나비』의 시편들의 일부가 발표된 것이고 보면, 그의 전시작 중 3분의 2 정도는 이 기간에 썼거나 발표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다. 1936년에는 동북제대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이상이 대행하여 첫 시집 『기상도』(1936)를 출간, 졸업 후에는『태양의 풍속』(1939)이 간행되었다. 이 시집들은 자신이 구축한 모더니즘 이론과 현대시가 지녀야 할 주지성과 회화성, 그리고 문명 비평적 태도 등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이 시기 그는 ‘과학적인 시학’을 접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그러한 경향에 따른 자신의 문학이론을 펼치게 된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1939)로 복직하나 1940년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된 뒤 작품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어 친일작품을 내는 것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경성고보의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정치적인 시를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남한 정부 수립시기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며 남으로 전향하였고 중앙대, 연희대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며 생업을 이어간다. 이 시기에 시집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와 저서『문학개론』(1946),『시론』(1947),『시의 이해』(1949) 등이 간행된다. 한국전쟁 중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납북되었다. 이후 북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시론
윤병로, , 집문당, 2010. 259-260쪽
김기림은 3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구축하고 그에 따라 실제로 전형적인 모더니즘 시를 창출해냈다. 그의 시론은 시기별로 크게 3단계로 구분 김기림, , 앞선책, 1994. 6-10쪽
할 수 있는데, 1930년대 초반에는 이미지즘적인 것이었다가 기교주의로 흘러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반성하여 1930년대 중반에는 내용과 기교의 조화를 결합한 주지주의적 경향인 전체시론을 나타냈다. 동북제대 졸업 후 광복 전까지는 과학적 시학을 주된 특징으로 하며, 해방 이후에는 전체시론을 더욱 발전시켜 민족시의 방향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여 새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시인의 역할과 사명을 역설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론은 시대의 전(前) 시대의 이론의 한계를 발견하면 그것을 변화하고 발전하는 식의 과정을 밟아왔다. 여기서는 1930년대 중후반을 중점으로 다룬 『시론(詩論)』 (1947)을 중점으로 살펴보겠다.
전일숙, , 1989.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