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 교육의 비판과 본질주의 교육의 문제점 보완
본질주의 교육사상과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오늘날의 교육 이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사상이다. 교육 후 지식의 전달 정도를 중시하는 본질주의 교육사상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지식을 가진 교사로, 교육 중의 사고 혹은 과정을 중시하는 진보주의 교육사상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학생(혹은 학생의 흥미, 관심)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사상은 모두 각자 지향하는 목적성이 뚜렷하며,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목적, 혹은 학생의 지적수준이나 발달정도 및 교육환경 등 상황을 이루는 무수한 변수에 따라 어느 쪽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어떤 주의가 적합한가를 말하기 이전에 어느 사회의 어느 교육단계를 기준으로 어떤 주의를 채택할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공립초등학교 교육에의 적용에 있어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본질주의 교육사상의 보완해 나가야 할 점, 그리고 유교교육사상을 이용한 본질주의 교육사상의 보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교육의 내용 혹은 지식의 내용에 대해 본질주의와 진보주의의 입장이 다른데 어떠한 지식을 학교 수업에서 다루어야 하는지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접근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질문, 교육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두 번째, 본질주의도 진보주의도, 혹은 다른 그 어떤 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교육이 가치 있는 것을 학생이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치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첫 번째 질문인 교육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면, 이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문가들 보다는 삶의 전반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회의 구조,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통찰력 있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타인과 공감하고 협동할 수 있는 도덕적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데, 이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삶을 해석하는 안경으로서의 지식, 즉, 해석의 틀을 지식으로서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대해 Broudy는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지식과 개념들을 바탕으로 연상적이고 해석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이러한 기본적인 지식과 개념들이 해석의 틀이 된다고 주장한바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흥미나 관심에 앞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배우고 또 가르쳐야 할 것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수십세기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정신적 유산인 고전의 학습과 새로운 기술의 학습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주의 교육에서는 이러한 고전학습의 중요성이나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형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기본지식과 개념들의 필요성을 간과한 채, 학생의 흥미를 우선시 하고 그 분야, 혹은 그 분야 근처의 지식만을 파고 들어가 학습하게 되는 것들만을 교육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물론 그 학생들은 본질주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보다 몇 몇 분야에 한해서는 심도 깊은 지식을 가지게 되겠지만, 세상을 균형적으로 보는 시각은 가지기 힘들다는 데 있다.
쉬운 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관심 있는 부분은 누구보다 예리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려서부터 전혀 문외한인 채로 자랄 위험성도 크다. 또한, 사회 전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고급기술자가 될 수는 있어도 사회정책결정에 지혜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사회는 이미 아주 넓어졌고, 자신의 흥미가 닿는 부분보다 닿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의 정책결정까지도 시민들이 참여해야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의 성립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의지나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로, 적어도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상식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러한 상식을 학교에서 (특히 의무교육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물론, 그것이 학생의 흥미에서 시작된 것이건 아니건 보다는 그것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또, 진보주의 교육에서의 지나친 경험중심의 교육은 사회나 사회인등의 개념을 모두 제외하고, 지식의 습득이라는 면에서도(특히 진보주의에서 강조하는 심화된 지식) 문제점을 갖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위개념을 알지 못하면 상위개념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진보주의 교육에서는 상위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학생이 스스로 하위개념을 학습하게 하고, 나아가 상위개념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돕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을 하나하나 발견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그들이 배울 수 있는 전체적 지식의 양은 본질주의 교육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진보주의 교육의 가장 큰 허점이 이것인데, 방법을 강조한 나머지 그 내용적 측면이 부족하므로 이것은 지식을 기반한 더 큰 발견을 막게 된다. 하위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위개념의 것을 보더라도, 아무리 그 학생이 탐구의 사고를 잘 아는 학생이라도 상위개념의 것이 상위개념의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흥미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무수한 학생들의 흥미 중 이익이 되고 지속적인 흥미(존 듀이가 말하는 interest라는 것)를 분별하는 것은 교사이며, 또 교사가 그 흥미를 교육과정으로 끌어오는 과정에서 진보주의는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해 그것을 교육과정 속으로, 혹은 특정한 내용으로 유도한다는 것 자체는 흥미를 이용한 교육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보주의가 학생의 흥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진보주의라는 교육사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전락시키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