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위해 을 읽기 전에도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문을 꼼꼼하게 읽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받는다는 애정소설이지만 과연 조선시대의 애정소설은 남녀의 사랑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은 흔히 알고 있던 고전 소설 속의 사랑이야기의 공식 즉,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나 둘 사이를 갈라놓는 고난이 등장하고 그 역경을 이겨내고 둘이 다시 결합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을 이룬다는 것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물론 주생과 선화가 약혼까지 하지만 전쟁 때문에 둘이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액자소설 주생과 선화의 만남의 기우(奇遇)를 신비롭게 처리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고, 작가 권필 역시 당시의 성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소설창작 자체를 달갑게 생가하지 않음에 따라 중국의 이야기로 위장하여 바꿀 수밖에 없었던 현실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마무리 처리를 사실적이면서도 여운이 남는 신비로운 대단원으로 처리하기 위한 고도의 문학적 후법으로서 액자소설의 구조를 취했을 수도 있다.
의 형식을 취해 열린 결말로 끝이 나기 때문에 후에 주생이 선화와 다시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의 결말은 둘의 결합을 보여주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배도를 배신한 주생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결말은 당대의 소설들과는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의 이산은 다른 소설들처럼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큰 축이나 해피엔딩을 위한 극적 긴장감의 장치라기보다 작가의 현실상황에 대한 인식 태도와 관계있다.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임진왜란을 소설 속에 차용하여 전쟁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기능을 덧보태고 있는 것이다. 작가 권필은 작품 속에 당대의 사회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전쟁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의 모습을 등장 인물들을 통해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염정소설이 조선 시대에 쓰여 졌다는 사실이 다분히 놀랍다. 그러나 은 단순히 한 남성의 여성편력과 그의 여성들이라는 현대소설에서 차고 넘치는 통속적 사랑 이야기로만 볼 작품이 아니다. 주생전의 작가가 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사적으로 가치와 위상을 가진 작품이다. 지금부터 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청출어람, 사실성의 확보
은 『전등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의 지리적 배경이 전당(중국 전기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배경)이라는 것과 작품에 직접 『전등신화』중 한편. 중국 원나라 때 회남지방에 살던 평민의 딸인 유취취가 같은 서당에 다니던 가난하지만 문필이 뛰어난 김정을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다는 줄거리.
이라는 작품명이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태상, 『조선조 애정 소설 연구』, 태학사, 1996.
양쪽 언덕의 집에서 이따금 초롱불이 희미하게 비쳐 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전신의 냉기 를 느끼며 물가로 배를 대어갔다. 알고 보니 그곳은 전당(錢塘)이라는 곳이었다.
전당은 그에게 향수를 주었다. 선조 대대로 살아온 이곳은 그에게 고향 이상의 깊은 감명을 주는 곳이었다. 더구나 새벽의 기분이 기분인지라, 이 자유로운 강호 유람의 선비는 즉흥에 맡겨 글 한 수를 읊었다.
...(중략)...
주생이 쓰기를 마치자, 그녀는 정성껏 봉해서 치마 띠 속에다 간직했다. 이날 밤, 그들은 고당부 (高唐賦)를 읊으며 맘껏 즐겼다. 그것은 김생(金生)과 취취(翠翠)며 위란과 빙빙의 재미에 견줄 바 아니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