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연구] 아버지의 힘, 김영철전에 나타난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어가며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다. 아버지는 집이란 울타리를 지키는 존재이며 그 안을 지킬 의무가 있다. 외환위기와 조기퇴직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아버지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굳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예전만 같지 않더라도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의무를 져버릴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다.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기까지는 남녀의 결혼으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풍파를 딛고 일어선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이상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늘이 아닌 그동안 집이란 울타리를 지켜준 실체로 들어 났을 때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세상의 폭력 앞에 진정한 아버지로 다가서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남성의 실추된 권위를 찾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남자로 태어나 짊어지게 된 삶의 무게를 조명하려 할 뿐이다. 아버지로서 구체적으로 조명할 대상은 ‘김영철(金英哲)’ 이란 사람이다. 김영철은 누구인가? 그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영철’은 ‘조선’이란 나라에 살았으며 庚子年 1600년 평안도 영유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에 조선이 명나라를 도와 후금(청)을 치기 위해 징병되어 참전하게 된다. 당시 ‘김영철’은 2대 독자로 태어나 집안의 대를 반드시 이어야 했다. 그는 조부와 어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지키기 힘든 약속을 하며 고향을 등진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홍세태가 지은〈김영철전〉한문소설이다. 〈김영철전〉은 일찍이 박희병에 의해 ‘17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제국질서의 재편을 싸고 명 청 조선이 전쟁을 벌인 시대에 민족적 위기를 맞고, 그 민중의 삶에 재난이 초래된 시대를 사실적인 필치로 그린 소설이며. 놀랍게도 한 민중의 개인사와 동아시아가 한데 혼융되어 빼어난 역사적 총체성을 구현해내고 있다’ 고 평가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김영철전〉의 이본 중에 하나인 국문본 〈김영철전〉은 선본인 한문본의 작품성 위에 여성적 시각이 합쳐진 소설이다. 〈김영철전〉의 국문본(이하 국문본) 은 한문본에는 없는 ‘김영철’의 편지글과 아내의 편지글 등 심리묘사가 두드러진 부분이 추가 되어있다. 하지만 국문본은 반 정도의 분량이 유실되어 뒷부분만이 남아 있다. 여기서는〈김영철전〉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한문본과 국문본을 넘나들어 ‘김영철’이 겪은 특별한 일화를 통해 남편이며, 아버지인 남자를 조명할 것이다.
〈김영철전〉서사적 순서에 따른 아버지의 모습
1)고난의 시작
전란에 휘말린 ‘김영철’은 무사귀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후금(청)의 포로가 된다. 후금의 장군 아라나(阿羅羅)는 전쟁에서 죽은 자기의 동생과 닮았다며 자기의 하인으로 부리려고 해 요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고국에 돌아가는 일은 요원해 졌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영철은 감사해야 했다. 영철은 두 번 이나 탈출을 시도하여 그때마다 월형(刑)을 받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후금의 법에 월형을 세 번 받으면 죽이게끔 하는 법이 있어 아라나는 그에게 죽은 동생의 제수에게 장가를 들게 하여 도망을 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덧 둘 사이에 ‘득북’과 ‘득건’이란 아이가 태어나고 영철은 고향에 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 흐릿해져 간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책임감이 그에게 지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진정한 가정이란 이곳이 아니었다.
후금의 아내는 이러한 영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멀지 않았으니 장차 당신과 이별하게 되겠군요.” 후금의 처는 영철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히며 정감 있는 말을 건넨다. 영철은 그녀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직접적인 영철의 언급이 없지만 이미 타향에서 한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많은 고민이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커서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큼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철은 이에 대한 고민을 오래하진 않는다.
2) 탈출과 중국에서의 생활
같이 끌려온 포로 중에 한족(漢族)인 전유년(田有年)은 중국으로 도망하자고 제의를 한다. “영철. 너는 부모가 조선에 계시긴 하지만 여기에 이미 처자를 두었으니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우리와 자못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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