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

 1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1
 2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2
 3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3
 4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4
 5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공리주의 - 이론의 개관 - 나의 경험 - 도덕교과에서의 지도방안 - 8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이론의 개관
18세기 말부터 1세기 중엽까지 영국을 지배하였던 사회사상이다. 공리(功利)를 증진시키는 것을 행위의 목적과 선악(善惡)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J. 벤담에 의하여 세계화되었고, J. 밀과 그의 아들 J.S. 밀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급진주의자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사상적 기조로 하여 공리 또는 최대의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다. 즉 벤담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고통과 쾌락에 의하여 지배되고 모든 인간행위의 동기는 필연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데 있으며, 그 결과 쾌락과 고통은 모든 인간행위에 대한 선악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 했다. 벤담은 또 이러한 원리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결국 이기적인 개인의 결합체인 사회의 기본원리를 에서 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법이나 정치제도 또는 도덕이나 종교도 모두 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따라서 그 정당성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특히 그는 국가의 기초는 계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성에 있고, 그 필요성이란 개인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벤담의 주장이 어떠한 질적(質的) 차이도 무시된 다수인(多數人)의 행복이라는 점에 반해, J.S. 밀은 쾌락과 고통을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로 본다는 점에서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러나 쾌락이 모두 양적(量的)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가지는 것이며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더 중요하다고 함으로써 공리주의를 수정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평등한 존재로 보고 모든 인간이 1인으로서 계산되어 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던 벤담의 사상과는 커다란 차이를 이루는 것이었다. 한편, 이에 앞서 J.S. 밀의 아버지이며 J. 벤담의 제자인 J.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 원리에다 의 원리를 도입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개인 속에 이타적(利他的) 행위를 할 수 있는 심리적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공리주의는 영국 산업혁명기의 사상적 표현으로 등장하여, 여러 해 동안 수정·보완되면서 특히 1세기 영국의 선거제도와 의회제도를 비롯한 정치·법률·경제 등의 여러 제도의 민주적 개혁에 크게 이바지한 뒤, 산업자본주의의 전환과 함께 T.H. 그린 등의 이상주의로 바뀌어 갔다
1)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벤담(1748-1832)은 그의 최초의 公刊 저서인 『政府論 短編』序文에서 자신의 기본 공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다’라고 천명하였는데, 이것을 공리성의 원리 혹은 공리주의라고 한다. 공리성의 원리는 쾌락주의와 최대행복의 원리로 분해 될 수 있다.
쾌락주의란 인간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고통은 유일한 惡이고, 쾌락은 유일한 善이라는 것이다. 쾌락이 유일한 선이라는 쾌락주의는 벤담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고 18세기 영국도덕철학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공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벤담 자신도 그것을 확신한 나머지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사회문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벤담은 여러 종류의 쾌락과 고통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며 단지 양적으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벤담의 양적 쾌락 공리주의는 후에 밀의 비판을 받게 된다. 벤담은 여기서 두가지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는 심리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인은 쾌락추구와 고통회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명제고, 둘째는 첫째 명제로부터 바로 고통이 유일한 악이요, 쾌락은 유일한 선이라는 가치판단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벤담은 첫째 명제를 당연시하여 이 심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예외적인 존재는 없다고 단정하였다. 만일 이 주장이 심리적 이기주의를 의미한다면 규범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의문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기적으로밖에 행동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이들에게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공리성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고려되는 당사자 전체의 행복의 증진에 관련되어 있다. 이것이 공리성의 또 다른 원리인 최대행복의 원리이다. ‘어떤 행위가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그것을 감소시키는 경향보다도 큰 경우에는-사회전체에 대하여-공리성의 원리에 합당하다고 말한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설』에서는 최대행복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단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벤담이 사회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대행복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의 量이 측정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合算이 가능해야 한다. 벤담은 쾌락의 계산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쾌락의 크기는 강력성지속성확실성遠近性多産性순수성 등을 고려하여 측정할 수 있고, 이러한 쾌락측정방법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적용하여 산출한 후 합산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쾌락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개인의 행동선택에 있어서 쾌락 계산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정밀한 계산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지, 또한 관련 당사자 모두의 쾌락을 합계하여 사회 전체의 쾌락을 계산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
벤담은 공리성의 원리를 비판하는 도덕원리를 비판하였으나 공리성의 원리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원리는 그것 자체로서 증명 불가능한 것이며, 증명의 연쇄는 그 출발점을 다른 곳에 갖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즉, 이 증명은 불가능하며 동시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2) 밀의 질적 공리주의
밀(1806-1873)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행동들이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에 비례하여 옳고, 행복의 반대(불행)를 산출하는 경향에 비례하여 그르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벤담의 주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벤담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돼지에게나 합당한 철학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응하여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였다. 어떤 종류의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고상하다는 것이다. 즉 소량의 고급쾌락이 다량의 저급쾌락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고급쾌락이란 양자를 다 아는 자가 선호하는 쾌락이고, 쾌락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면 다수의 선호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쪽을 다 경험한 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슷한 선호를 나타내지도 않을 뿐더러 쾌락전문가들 사이의 이견을 다수결로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임시방편적이다. 밀이 돼지의 철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했지만 질적 구별의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질적 공리주의는 모호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