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노래, 공무도하가
1. 내용요약
公無渡河 님더러 물 건너지 말래도,
公竟渡河 님은 건너고 말았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서 죽었으니.
當奈公何 님이여, 어찌하리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지식산업사, 2005), 105면.
는 고대의 다른 시가들과 마찬가지로 설화 의존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설화와 더불어 전승되고, 설화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정하영, 「공무도하가의 성격과 의미」,『한국고전시가작품론1』(집문당, 1992), 15면.
따라서 작품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설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래는 이렇다. ‘조선’의 ‘진졸’ 곽리자고가 어느 날 새벽에 머리가 새하얀 미치광이 사나이, 백수광부라고 기록되어 있는 위인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거리면서 강물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아내가 따라가면서 말려도 듣지 않고, 사나이는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아내는 강을 건너지 말라는 뜻으로 “공무도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노래를 지어불렀는데 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를 다 부르자 아내도 빠져죽었다. 조동일, 위의 책, 105면.
2. 작품에 관한 기존의 논의 정하영, 위의 논문, 13~15면.
는 한국문학사의 첫머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부딪히게 되는 중요한 문제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동안 문학사류와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거기에 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불과 사구 십육자 안팎의 짤막한 작품에 대해서 이토록 큰 관심이 집중되고 논란이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한국문학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 문학사의 실마리가 다르게 잡혀질 수도 있고 우리나라 초기 문학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기되고 논의되었던 문제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이 작품의 제명을 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아니면 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으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은 악곡의 명칭이므로 문학작품을 가리킬 때는 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둘째, 이 작품의 국적을 중국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작품은 국문학 연구의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의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자료의 전승 과정이나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 작품을 중국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그 후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어 이를 우리나라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셋째, 이 작품의 작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를 전하는 초기의 자료들은 작자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서술을 하고 있다. 『금조』에서는 작자를 곽리자고로 소개하고 있는 데 반해 『고금주』에서는 곽리자고의 아내인 여옥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의 내용을 보면 이 작품의 실질적 작자를 이들 가운데 하나로 보자는 견해도 있고 이들이 각기 이 작품의 생성에 일정한 몫을 담당한 것으로 보자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는 개인의 창작품이기보다는 민요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므로 어느 특정인을 작자로 단정하기를 유보하려는 견해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다. 김학성(1980), 조동일 (1982), 성기옥 (1988) 등은 단일 작자에 의한 저작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작품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작품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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