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가(_無渡河歌) 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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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無渡河歌) 작품론
(無渡河歌)는 고대가요로 (龜旨歌) (黃鳥歌)와 함께 기록으로 남아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 많은 논란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 가장 말이 많은 작품이다. 창작 시기 문제부터 작품의 국적 문제, 작자 문제, 내용 문제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이전의 견해와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도록 하겠다.
1.의 내용
公無渡河 님더러 물 건너지 말래도
公竟渡河 님은 건너고 말았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서 죽었으니,
當奈公何 님이여, 어찌 하리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 지식산업사, 2006, p.99.
의 번역은 위의 것 말고도 다양하나 말의 차이일 뿐 크게 내용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는 중국문헌에 중국의 악부시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채옹(蔡邕)의『금조』(琴操)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를 들 수 있다. 이 노래에 대한 기록이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나게 된 것은 16세기말 또는 17세기 초의 저작으로 보이는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서이다. 18세기 이후에는 여러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이형상(李衡祥)의 『지령록』(芝嶺錄), 박지원(朴趾源)의『열하일기』(熱河日記), 이덕무(李德懋)의『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유득공(柳得恭)의『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한치윤(韓致奫)의『해동역사』(海東繹史) 등에 실려 전하게 되었다. 이들 문헌을 통하여 전해오는 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가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배를 저어 나루를 건너가는데 흰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거리는 미친 듯한 사나이가 강가로 달려오더니 세찬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부르고 붙잡으며,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렸으나 그 사나이는 듣지 아니하여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공후라는 악기를 타며 슬프게 한 곡조를 노래하니 그 소리가 아주 슬펐다. 곡을 마치자 그녀도 또한 남편의 뒤를 따라 물속에 빠져죽고 말았다고 한다. 곽리자고는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아내인 여옥(麗玉)에게 하였더니 여옥은 가슴아파하며 공후에 맞추어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다시 이웃의 여용(麗容)에게 전하였다. 引者, 朝鮮津卒 藿里自高所作也.自高晨刺船而濯 有一狂夫被髮提壺 涉河而渡. 其妻追之 不及, 墮河而死 乃號天噓晞, 鼓歌曰 公無渡河,公竟渡河,墮河而死 當奈公何 曲終 自投河而死 自高聞而悲之 乃援琴而鼓之 作引 以象其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