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상 특수교사상 특수교육교사 특수교사상 특수교육 특수교사상 자기소개
난 내 미래의 모습을 가끔 상상하곤 한다. 특수교사가 된 내 모습. 항상 상상 속에서는 아이들도 웃고 있고 나도 함께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만 상상해왔다. 미래의 내가 어떤 아동들과 어떤 수업을 할지 어떤 방법으로 이끌어 갈지를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사’ 라는 직업은 흔히 ‘사’자가 들어간다는 전문직이다. 전문직으로서의 교사. 고등학교 때는 ‘우와, 멋있다.’ 라는 생각밖에 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특수교육과라는 이 과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우리 아이들을 만나서 생활하면서 그 교사라는 전문직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무엇인가 무게감을 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초중고 다니면서 만났던 선생님은 담임선생님만 해도 12명이고 학교 내에서 만났던 다른 반 선생님과 다른 과목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교사는 아동과 학생들의 모든 영역에서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하는 문구를 읽으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조건 옳은 줄 알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그건 맞아.”라고 외쳤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나 선생님의 편향된 관점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그 선생님의 사고가 자신이 가르친 학생에게 똑같이 박혀진다. 교사는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다채로운 시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내가 되고 싶은 교사이다.
그렇지만 교사의 모습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있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 중에 한분은 우리에게 항상 봉사를 하라고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 책상에 가면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진이 참 많았다. 그 아이들의 소식도 우리에게 전해주고는 하셨다. 그런데 그 선생님만 그러신 게 아니였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오면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거의 모든 선생님들께서 유니세프에 후원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취직을 하면 유니세프에 아이들을 후원해줘야지’ 라고 다짐을 했었다. 교사의 모습이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은 정말 정서적으로도 지대한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나름 머리가 컸다고 내가 뭐가 된다고 평가하고 비하했었다. 해답지를 보고 해설하는 선생님, 무슨 내용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선생님 등등 그런 선생님들은 무의식중에 무시 했었다. “저 사람은 저게 자기 할 일인데 그거 하나 못한대?” 이런 말들을 친구들과 나누었었다. 나는 참 못된 애인지 모른다. 나름 초등학교 특수반에 가서 봉사와 함께 수업도 해보고 하면서 내가 잘 못 됐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 앞에 서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느꼈다.
나는 ‘특수교육’이라는 이 영역에서 최고 소리는 듣지 못해도 최고에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내가 공부하는 이 영역을 모른다면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으며 이 아동들이 사회에 나갈 때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전공영역을 확실히 한만큼 우리 다양한 아이들에게 여러 교수방법을 사용해 그 학생에게 맞는 교수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 특수 아동들에게는 4명당 1명의 교사가 필요하다고 법에 게시되어 있다. 학교에서는 아직 한 명의 교사가 여러 명의 장애아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봉사 나갔던 삼정 초등학교 특수 학급에서는 자기 반에서 수업을 듣고 시간표대로 특수반으로 한 시간에 두 명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으러 왔었다. 아이들의 장애도 다르고 장애의 경도도 다르기 때문에 수업의 진도도 다 달랐었다. 어떤 아이는 열심히 하고 싶지만 간단한 산수 문제를 푸는데 어려워하였고 어떤 아이는 풀 수 있지만 짜증을 부리며 풀기 싫어하며 집중을 안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열 개씩 모으게 해서 한 시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시간을 할 수 있도록 강화를 하였다.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는 레고를 강화물로 사용하여 백 개를 모으면 레고세트를 하나 사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강화물은 자주 사용하면 아이들이 당연하게 여겨 자주는 안 되지만 ADHD나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기 싫어하는 아동들에게 가끔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교 장애아동들의 형편은 거의 어려웠다. 학교 옆에는 영세민 아파트가 있었고 장애부모님 밑에 장애아동의 출산율이 높듯이 그 학교 장애아동들은 부모님이 장애인이시거나 밤에 일하시는 분도 많아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하시는 분이 많았다. 그 학교선생님이 한 달에 한 번씩 바쁘게 하시는 부분이 있었다. 무엇인가 했더니 장애아동들을 지원해 주는 법들이 있는데 국가에서 장애아동들의 학원비를 지원해 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학부모님들이 그 학원의 학원비의 영수증이나 통장 같은 것을 복사해서 제출을 해야 되는 데 그 학교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장애인 부모님이나 밤에 일하시거나 다른 지역에 일하러 가시는 바쁜 분들이라 선생님이 다 맡아서 하고 있었다. 몰랐는데 아이들은 태권도도 다니고 수학 학습지도 하고 열심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계발해 나가고 있었다. 귀찮으시지만 그 선생님은 자기가 부모님 역할까지 다 해주고 계셨다. 내가 처음으로 봉사를 나간 곳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본 교단에 선 특수교사셨지만 정말 배울 점이 많았던 분이었다. 아이들과 장난스럽게 또는 엄격하게 친 삼촌 같은 선생님의 모습이셨다. 장애아동이 못된 애들이랑 어울리면 걱정하시고 설득하려고 하셨다. 몰래 물건 훔치는 것도 고쳐주시려 하시고 자꾸 외상 하는 버릇도 고쳐 주려 하셨다. 그렇다고 수업을 소홀히 하신 것도 아니셨다. 교구 같은 것도 미리미리 준비 하셔서 시계 보는 수업을 할 때는 커다란 시계를 준비하여 시계를 직접 아이들이 돌려보면서 할 수 있게 하셨고 덧셈을 할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석모양으로 수업하셨다. 책에 나와 있는 하트의 이상적인 교사상이며 정말 아빠 같은 이상적인 선생님이셨다. 내가 교단에 선다면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매달 아동들의 학원영수증을 여기저기 떼러 다니고 아이들 한명 한명의 아동들을 다 보호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난 꼭 할 것이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가 없다. 처음 봉사나간 그 학교에서의 그 아이들의 눈빛. 너무 예뻤다. “선생님~ 선생님~” 부르면서 졸졸 따라와 내 손 꼭 잡고 돌아다니는 데 너무 좋았다. 정말 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장애인 부분 전공만이 아닌 사회복지 부분과 치료 부분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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