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黃鳥歌) 작품론
1. 작품요약
1) 작품전문
翩翩黃鳥 (편편황조) 훨훨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 (자웅상의) 암수 정답게 노니는데,
念我之獨 (염아지독) 외로울사 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2) 배경설화
유리와 3년에 왕비 송씨가 세상을 떠나자, 왕은 다시 두 여자를 계비(繼妃)로 맞아들였다. 한 사람은 골천 여인인 화희(禾姬)요, 다른 사람은 한인(漢人)인 치희(雉姬)였다. 두 여자는 왕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어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어느 날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 이레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 두 여인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는데,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漢)나라 집안에서 온천한 계집의 몸으로 어찌 이렇게 무례하게 구느냐?” 하고 꾸짖었다. 이에 치희는 부끄럽고 분해서 제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뒤늦게 왕이 말을 달려 치희를 찾아 나섰으나, 치희는 노여워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일찍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뭇가지에는 꾀꼬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왕이 그것을 보고 느낀바 있어 ‘노래(황조가)’를 지어 불렀다.
2. 주제
사랑하는 임을 잃은 슬픔
3. 기존 연구
1) 의 배경설화
의 배경설화를 ‘사실의 진술’로 보느냐, ‘허구의 진술’로 보느냐에 따라 를 개인창작시로 볼 것인가, 개인작이 아닌 공동작으로서 민요로 볼 것인가에 논의가 있었다. 전자의 경우 의 작자는 《三國史記》의 기록을 사실의 진술로 받아들여 를 유리왕의 개인창작시로 보며, 그 제작 연대나 창작의 동기도 배경설화의 진술을 면밀하게 字句해석함으로써 해답을 얻어낸다.(이종출, 권영철, 민영대 등) 여기서 한걸음 나가 고구려 초엽에는 漢文化와 빈번한 접촉을 가진 계층은 한문을 자유롭게 구사했으므로 는 유리왕이 漢字로 직접 창작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하였다는 주장도 있었다.(정무룡)
후자의 경우 배경설화를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보고, 또한 신화적 존재인 유리왕이 창작시를 지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설화와는 전혀 무관한 자리에서, 이를테면 중국의 동경지방 민속에서 보듯 남녀가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회에 불려진 애절한 求愛曲으로 추정함으로써 민간에 불린 민요라고 보았다. 三國志 東夷傳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계절적 祭禮儀式에서 베풀어지는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회에서 불려진 노래로, 거절당한 남자의 애절한 求愛曲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신화적인 제왕으로서의 유리왕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버린 비탄에서 부른 노래가 아니라 어떤 한 인간이 (작자는 불분명하지만) 애정을 구하면서 부른 순수한 서정시가로 를 본다.
한편 를 유리왕대를 중심으로 고구려 부족연맹사회에 유포되었던, 남녀애정을 간절히 읊은 민중가요로서 『詩經』처럼 원작자를 상실한 것으로, 혹은 隨神祭와 같은 性的 제의에서 남녀 사이에 구애의 대상을 찾으면서 불리어진 노래로 원작자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함으로써 민요로 보기도 하였다.(김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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