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에 대한 짧은 보고서
1.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윤리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며, 그것이 곧 선이다. 그에게 있어, 행복이란 완전한 덕을 따른 정신의 활동이며, 인간의 선이란 결국 덕에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따라서 행복과 선을 위해서 덕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덕은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구분된다. 지적인 덕은 사물의 이치를 인식하고 올바른 행동을 계획하는 것으로서 철학적 지혜나 이해력이나 실천적 지혜 등이며, 도덕적인 덕은 너그러움, 절제, 용기 등과 같은 성품의 상태이다.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덕들이 조화롭게 발휘될 때 행복과 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즉, 행복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성을 통한 진리인식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실천지의 중요성
인간의 삶은 행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행위는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욕망과 목적적 이치가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성품과 사유의 결합을 통해서만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조적 이성 혹은 사유 그 자체는 진리와 허위에 관계될 뿐 무엇을 움직일 수 없다. 오직 목적적이고 실천적인 사유만이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인 덕들(기술, 학적 인식, 실천지, 지혜, 이성) 가운데에서 실천지를 통해서 선한 사람에 대해 논의한다. 실천지가 있는 사람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에 관해서 잘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실천지란 인간적인 선에 관해서 참된 이치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이다. 즉, 인간에게 있어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한 참된 이치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도덕적(=윤리적) 성품(=본성적 덕)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나면서부터 옳으며, 절제할 줄 알며, 용감할 수 있지만), 시력이 없이 움직이는 강한 신체는 넘어져도 세게 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성(=실천지)을 얻어야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덕이 실천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천지 없이는 덕이 성립하지 못한다는 말은 지당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덕을 정의하면서 (성품의) 상태와 그 영역을 지적하고나서 그 상태가 올바른 이치를 따른 것이라고 부언하는 사실이 그 점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올바른 이치란 실천지를 따른 이치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상태를 덕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덕은 올바른 이치를 따른(그리스어 카타로서 남의 말의 이치를 듣고 따르는 경우를 포함한다) 상태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이치를 머금고 있는(그리스어 메타로서 따르는 태도가 자주적이고 자신 속에 이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상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이치가 다름 아닌 실천지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그에게 있어 모든 덕이 결국 학적 인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덕이 이치 내지 합리적 원리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덕은 이치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덕은 이치에 대한 학적 인식 혹은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천지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또 도덕적 덕 없이는 실천지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본성적 덕의 경우에는 한 가지의 덕은 있으나 다른 덕은 가지지 못할 수 있지만, 실천지를 가지면 모든 덕이 따라서 존재하게 된다. 덕(=성품으로서의 도덕적 덕)이 없이는 올바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실천지(지적 덕으로서의)가 없어도 올바른 선택은 불가능하다. 전자는 목적을 결정하고, 후자는 목적을 실현시켜주는 것들을 행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의술이 건강보다 우월하지 않은 것과 같이 실천지가 철학적 지혜를 지배하지 못한다. 실천지는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기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를 위하여 명령하는 것이지 지혜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신적인 부분이 실제적인 활동보다 우월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실천윤리를 강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사유의 기능인 이성을 잘 발휘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실천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천지는 인간의 욕망이나 정념을 이성과 연계지움으로써 이성적(합리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실천윤리 (덕)
그는 관념의 수준에 머무는 행복보다는 덕있는 행위를 통해 도달될 수 있는 덕있는 사람의 행복을 문제삼는다. 실천지와 함께 도덕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덕적 덕이다. 실천지와 함께 도덕적인 덕을 같이 따라야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유활동을 탁월하게 하는 지적인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해서 발생도 하고 성장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편, 도덕적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본성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것에 반하는 습관을 형성할 수 없다. 도덕적 덕들은 본성적으로 우리 속에 생기는 것도 아니며, 본성에 반하여 우리 속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으며, 또 그것들은 습관에 의해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덕은 실천을 통해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옳은 행위를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품(으로서의 덕)은 활동(=행동)에서 생기며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도덕적 덕은 세 가지 정신활동들 즉 정념, 능력, 성품 가운데 하나이다. 쾌락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들이 정념이며,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능력이며, 정념과의 관계에서 잘 혹은 잘못 처신하게 하는 어떤 것이 성품이다. 두려워하거나 노여워한다고 해서 비난받거나 칭찬받지 않는 것처럼 정념 자체는 도덕과 무관하다. 어떤 정념을 느끼는 능력 또한 그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도덕과 무관하다(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덕은 정념도 마음의 능력도 아니고 성품임에 틀림없다. 덕은 성품 또는 성격의 상태(=헤크시스)이다. 어떤 상태인가? 눈의 덕이 잘 보게 하는 것이듯, 덕은 그것을 가진 어떤 것이 좋은 상태에 이르게 하고 그것의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덕은 사람을 선하게 하며 그 자신의 일을 잘 하게 하는 성품이다. 덕은 정념과 행동과 관련하여 과도와 부족은 실패이며 중간은 일종의 성공이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사람들에 대하여, 마땅한 동기로, 마땅한 태도로 정념을 느끼고 행동한다면 중간적인 것이며 동시에 최선의 일이다. 사람은 과도나 부족이 아닌 중간적인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적인 것은 올바른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덕은 중용에서 성립하는 행위(정념도 포함된다) 선택의 성품이다. 즉, 정념과 행위를 선택함에 있어(물론 모든 정념과 행위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와 부족을 피하고 중용을 선택하려는 성향을 가진 성품의 상태인 것이다. 중용이란 대상 자체에 있어서의 중간(=산술적 비례에 따른 중간)이 아니고 만인에 대해서 오직 하나만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간이며, 만인에 대해 같은 것이 아니다.
▶중용이란?
중용 자체는 하나의 덕 혹은 원리에 해당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용할 행위지침이 아니다. 예를 들면, 공포와 태연의 감정과 관련하여 말하면 용기가 중용이다. 태연함에 지나친 사람은 무모한(=만용) 사람이며, 공포가 지나친 사람은 겁쟁이(=비겁)다. 금전과 관련하여 말하면 과도는 방탕이며 부족은 인색이며 중용은 너그러움이다. 이는 삶의 원리일 뿐 구체적인 행위지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과다와 부족의 양 극단에서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이 적절함 내지 마땅함인지 혹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행위하는 것이 중용의 정념과 행위인지에 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따라서 중용의 선택에는 원리를 알고 있다거나 이해하고 있다는 것 외에 또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이 중용의 원리를 행위지침으로 적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것들은 개별적인 사실에 의거하며, 그 판정은 감각에 달렸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이란 구체적인 상황판단능력 즉, 기지(機智)로서의 실천지에 해당한다.
중용을 선택하는 성향을 가진 성품으로서의 도덕적 덕이 습관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도덕적인 사람이 됨에 있어 습관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중용은 미리 규정된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 상황에서 새롭게, 이성적 원리에 의하여 그리고 또 실천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결정할 때에 기준으로 삼을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숙고하여 결정한 것으로서 이성적 원리와 사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용은 선택되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행위로 실천되어질 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중용의 선택과 실천 즉, 도덕적 덕의 형성과 실현은 반성적 숙고와 함께 습관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행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내적 성품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품은 반복적인 행위수행 즉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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