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지어내기 선수인가 보다. 긴 다리 아저씨가 아닌 긴 양말 신은 아이 얘기를 해 달라는 딸의 말에 어쩜 이렇게 선이 굵고 산뜻한 동화를 생각 해 냈을까. 작품의 주인공을 삐삐라 이름 짓고 터무니없이 마구 지어내서 어른들을 당황하게 하고 아이들이 크게 웃을 수 있게 한 말괄량이 소녀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떤 아이디어였을까. 아동문학의 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혹 그녀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해서 대리만족 겸 만들어 낸 작품은 아닐까. 그 시대의 태생이라면 그리고 그녀의 외모에서 나는 너무도 반듯하게 자랐을 것이라는 평을 감히 해 본다. 얘기를 좋아 할 것 같아 보이는 얇은 입술이며 윤곽이 뚜렷한 얼굴형에서도 곱게 자란 태가 지나칠 정도로 가미 되어 있었다. 삐삐를 전 세계에 알려 아이들에게 씩씩함과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해 준 그녀도 사실은 자신의 딸은 삐삐의 말괄량이 같은 성격도 조금은 배웠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삐삐는 그녀의 작품에서 그녀를 닮아 끝없이 상상하고 꿈을 꾼다. 딸에게도 고마워 해야 한다. 딸이 그녀의 얘기 봇 다리를 풀게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삐삐라는 존재는 그저 긴 다리 아저씨로 남았을 것이다. 그녀의 딸은 아마 훌륭한 과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이처럼 훌륭한 어머니의 피를 받았다면 작은 머리 속에 우주 하나를 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작품을 접할 것을 대비해 좀 더 많은 책을 읽어 둘 껄 하는 후회가 앞선다. 아동문학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성인 도서만 고집 했던 나 인 것을 이 작품으로 인해 나는 어릴 때의 상상력이 성장 후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 해 낼지 몰랐다. 그것은 어릴 적 친한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늘 이런 도서를 끼고 살았던 친구는 지금 모그룹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상상했던 것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조금은 막대 먹은 듯하지만 좀 더 큰 다면 내 친구중의 한명인 모씨처럼 훌륭한 인물이 될 것 이다.
삐삐야 그 동안 어떻게 지냈니?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숙제를 마치고 봤던 말괄량이 삐삐는 나의 현실과 동 떨어진 환상을 갖게 했다. 어릴 적 삐삐를 본 후 “토미~~아니카~~”하며 언니들이랑 장난치며 삐삐놀이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너무도 귀여운 얼굴에 주근깨투성이 빼빼 쟁이 삐삐.
우리의 강인한 삐삐는 9살이다. 초등학교 2학년의 아이고 지식은 거의 바닥이지만 지혜는 성인을 능가 한다.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물어 보는 질문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대답을 하지만 도둑이 들었을 때 어른 보다 더 따뜻한 정으로 도둑을 감동 시킨다. 도둑들은 아이가 뭘 알겠냐 싶어 거짓말로 시계를 보러 왔다고 하지만 삐삐는 아직 시계를 본 적이 없는 불쌍한 아저씨들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힘으로 삐삐가 아저씨들을 이긴다. 도둑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춤을 같이 추고 식사도 한다. 아저씨들은 삐삐에게 간곡히 집에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삐삐는 금화 한 닢씩을 주며 돌려보낸다. “떳떳하게 번 돈 이예요” 이란 대사는 너무도 철 있는 어른이 아이에게 꽤를 부려 바른 길로 인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행동 인가. 크게 혼을 내서 보내지도 않고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을 아저씨들과 나누며 또 그들은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받아 가므로 양쪽의 합당함에 만족을 느끼기 충분 했다.
나는 얼마 전 학교에서 분실사고가 났던 일이 생각났다. 결과는 지목 했던 그 학생이 아니였고 학교 행사가 많은 날을 골라서 터는 사람들이 있으니 주의 하라는 공문과 함께 그 사건을 종결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상처는 치유 되지 못했고 며칠을 학교를 나오지 않아 선생님이며 반 아이들이 찾아 갔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정상적으로 수업 하고 있지만 나는 내내 그 아이가 신경이 쓰여 좀 더 얘기를 나누려 했고 실험에도 많은 참여를 유도 했다. 설사 그 아이가 범인 이였다 하더라도 꼭 그렇게 몰아 세워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우리 성진(가명)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한번만 말 해 줬다면 그리고 살짝 불러 떡볶이를 나눠 먹으면서 아이의 심리를 이용해 그런 행동을 못하게 잡아 줄 순 없었을까. 학교에서 자기의 자리가 분명히 커 진다고 느끼면 아이는 그 일에 더 충실해지려고 하는 것을. 돈이 없다고 주눅 들게 하고 학업이 떨어진다고 무시하는 조금은 나쁜 선생님들이 있기에 우리 아이들이 불안 선에 서서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왠만한 선생님 보다 더 지혜가 넘쳐 있다. 이 둘의 도둑 아저씨들이 집을 나올 때 신발 신은 모양이 삐삐와 닮은 짝짝이 였다. 어느새 나쁜 마음을 먹고 있던 아저씨들이 삐삐의 따뜻한 바이러스가 유포된 느낌 이였다. 그 그림이 참 좋아 보였다. 어깨동무를 하고 두 도둑은 금화를 보며 광대뼈가 두드러지게 큰 웃음을 웃고 있고 도둑의 본색을 살짝 드러낸 삐삐네의 술병이 호주머니 속에 있었다. 나는 이 삽화를 보고 그들처럼 웃었다.
이 책에서 비춰지는 삐삐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부모 같은 친구다. 말을 데리고 다니면서 차를 대신해 주고 원숭이는 또 다른 아이들의 호기심 덩어리 같은 동물이라 친구이기에 충분하다. 삐삐는 토미와 아니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늘 위험해 보이지만 그 위험은 재미가 되고 감동이 되고 또 하나의 추억을 저장해 두게 만든다. 이런 스타일의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 할까. 일단 아이들은 재미가 있으면 그 사람을 따른다. 말을 적당히 알아 들을 학년이 되면 우스꽝스러운 재미를 무시하고 한 단계 높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느끼는 재미를 솔솔 하게 생각한다. 나무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까꿍 하는 놀이도 너무 식상하단 뜻이다. 그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형상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스포츠를 찾을 수 있고 과학도 찾을 수 있고 도덕도 생각 케 할 수 있다. 삐삐는 단지 이런 본인의 생활에서 이론적인 설명만 빠져 있을 뿐 너무도 참된 교육의 선두주자 이다. 부모가 못하는 역할을 어린 나이의 삐삐가 다 경험케 해준다. 재미있고 밝고 긍정적인 삐삐는 우리 부모들이 꼭 본 받아야 할 인물이다. 혼자서 일을 척척 해 나가며 뒷 처리 까지 깔끔하게 하는 슈퍼우먼 같은 존재이다.
토미와 아니카는 삐삐가 늘 신기하다. 이 둘은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밥을 먹고 학교를 간다. 늘 그래왔으니까. 학교가 가기 싫어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릿속에 공부가 들어오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체생활에서 빠지면 그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당한 자유는 창의력을 높이고 그런 경험들이 사회에 나가서 비교분석도 가능 하게 될 것이다. 똑바르고 잘 닦인 고속도로만 가게 한다면 다른 갓길이나 국도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들과 먹 거리가 있는지 모를 것이다. 가끔은 너무도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놀이동산에 가보면 어떨까. 그러면 텅 빈 공간을 볼 것이고 모두가 이 시간에는 각자의 지식보충 시간이라는 것을 알 것이고 다음에는 학교라는 공간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삐삐는 너무 사회생활을 빨리 하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 생활로 인해 그녀의 친구들이 너무도 행복 해 하니 그 생활을 쉽게 접을 순 없을 듯 하다.
최근에 나는 삐삐가 정말 부럽다. 아직 부모와 같이 사는 나로썬 그러하다. 혼자 살면 무섭긴 하겠지만 엄청 자유로울 것 같다. 잠시 우리 학교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 보자. “삐삐처럼 집에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 언니, 오빠들의 잔소리도 안 들을 수 있다.”“생각만 해도 기분이 최고다. 하지만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 한데 나는 아직 돈이 없다.” “요리도 잘 해야 하고 청소도 혼자 해야 하니까 싫다.” “삐삐는 요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힘도 엄청 세다. 말도 들 수 있다. 어린애가 이렇게 힘이 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남자아이도 이긴다. 그래서 삐삐를 이기는 사람이 없다.” “경찰을 이긴다는 건 힘이 엄청 세야 하고 용기가 많아야지만 이길 수 있다.” “삐삐는 천하장사다. 나도 삐삐처럼 힘이 세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다.” “삐삐는 혼자 살지만 가진 게 너무 많다.” “요리도 잘하고, 힘도 세고, 금화도 많다. 매일 로또에 걸린 기분일 것이다. 삐삐는 정말 좋겠다.” 모든 아이들이 삐삐를 부러워했다. 첫째는 혼자 살아서(벗어 나고 싶은 욕망) 둘째는 힘이 세서 셋째는 돈이 많아서 이다. 이 세 가지가 우리 아이들이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잔소리에 아직은 어린 아이라 힘이 없고 경제력도 없는 아이들을 우리가 너무 가두어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옛날에는 왠지 가둬 키웠다고 하면 귀하게 컸다고 생각 했지만 요즘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무엇 하나라도 배우는 아이가 훨씬 더 값있어 보인다. 아이들의 유괴가 좀 심한 사회 이긴 하지만 우리는 너무 아이라는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둬 둔 화초들은 커 가면서 잡초처럼 꿋꿋해 지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겠지 영양분도 공급 해 주겠지 하는 기대가 커지고 그렇게 받지 못하면 이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때론 우리 아이들에게 강인한 잡초처럼 자랄 수 있게 옮겨 심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어른들이 모두를 처리 해 주니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시집, 장가까지의 경제적 부담도 부모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 시켜야 할 문제를 더 크게 벌이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얼마 전 여기 학교의 선생님 한분이 시집을 가셨다. 신입 선생님이라 벌어 논 돈도 없었다. 이 선생님은 당연히 부모의 재산이 자기 것 인양 자랑을 하고 다녔다. “최대한 시집 갈 때 많이 얻어 내야 해요” 하는 말에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렇다. 조금만 오냐오냐 하며 키우지만 않는 다면 적당한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좀 풀어두자. 삐삐가 들고 있는 저 말은 푸른 들판을 마구 뛰어다니는 자유를 상징하며 원숭이는 사람과 비슷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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