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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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정하고 싶은 것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진정 하고 싶은 것
=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이다. 다행히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적은 단 한시도 없었다. 늘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수많은 친구들을 볼 때면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건설적이어 보이지만 이러한 생각 때문에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것’은 때때로 너무도 쉽게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나는 내 스스로 매우 변덕이 심하고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단정지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변화하는 취미, 적성, 흥미, 고민, 모든 것들은 다 한 맥락 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때그때 장래희망이나 목표점들이 변화한 것 같지만 그 변화에는 나의 일관된 소질, 적성이 관여되어 있다. 스스로 그러한 지점을 분석하고 알아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기 성찰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성인들이 이러한 생각들을 스스로 의식적으로 해나간다면, 아직 그러한 것들이 확립되지 않은, 또는 너무나 다양한 부분에서 드러나기에 알아채기 어려운 아이들은 그들을 돌보는 어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신의 적성, 흥미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은 필수적이겠지만 그러한 것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적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상태일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외부의 개입이 있게 되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들은 드러나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상당히 권위적인 존재이며 또 그들의 명령, 그들의 칭찬에 의해 그 행동이 크게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호자의 필요 이상의 개입은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욕구를 자유롭게 드러내지 못하도록 막는다. 이는 결국 아이들의 부모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아이의 ‘천재성 발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지점은 켄 로빈슨의 책 에서도 끊임없이 얘기된다. 중 질리안 린의 어린시절 이야기에서 그녀의 부모님은 학교 교장으로부터 그녀를 학습부진아를 위한 특수학교에 보내기를 권유받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왜곡 된 시각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또 결론적으로 그 아이의 재능을 짓밟을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질리안 린은 그저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고 자신의 생각을 동작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이렇게 순수하고 투명한 그녀의 동기를 어른들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으로써 화답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그 제목을 말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유명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 거장이 된다.
아이들의 욕구를 포착하고 개발해 주었을 때에 그 능력은 끝을 모르고 발휘된다. 인도의 아이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영어를 깨우치고 뉴런의 구조에 대해 스스로 습득하였을 때에도 그것은 그 아이들의 흥미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컴퓨터 자체가 교육을 하기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컴퓨터라는 도구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용함에는 틀림없지만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눈에 띄게 상승하는 것에는 그것이 컴퓨터를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새로운 도구가 아이들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매일everyday”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설명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또 그것에 높은 집중력을 보이도록 이끌어 준 것, 영어로 설명되어진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을 스스로 연구하고 분석하도록 만들어 준 것은 선생님도, 컴퓨터도 아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그것으로 인해 높아진 제시된 문제에 대한 ‘흥미’이다.
사실 아이들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부모들이나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실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제도화 된 교육과정에서 상위레벨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니 기득권 사람들이 정의하고 제도화한 현재의 교육과정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번 깊이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유난히 미술 시간을 좋아했었다. 지금도 집에는 커다란 상자 안에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만들었던 양초와 시계, 목걸이 등등 많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다. 어머니는 그것을 유심히 보시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미술학원을 보내주셨다.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막연할지라도 그림에 대한 꿈을 더더욱 키웠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오고 그것이 입시와 맞물리게 되면서 부모님께서는 미술을 하는 것을 반대하시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을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자 학업에 오히려 더욱 집중할 수 없었고 성적은 점차적으로 떨어져갔다.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했었는데,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엉뚱한 곳으로 터져나왔던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상황에 대해 불만스러웠고 그래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이 미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이유는 고등학생이 되고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다시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시작과 끝에 맞물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미술을 시작하면서 많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뿌리 뽑을 수 있었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우스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미술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원해주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하고싶은게 행복하다는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에도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아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찾았을까? 아직 못 찾았다면 이아이가 정말 잘 할 수 있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어린 사촌동생이 있는데, 그 경우를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부모 눈에는 잘 안보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눈을 가리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 또한 중요할 것 같다. 작은 어머니께서도 늘 욕심을 부리시지만 잘못 된 방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늘상 드니 말이다.
그렇다면 흥미를 찾은 아이들이 결국 성공-자신의 인생에서-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포기했던 미술을 다시 시작하게 됐던 시점을 떠올려 보면 그 답이 나온다. 너무나도 단순한 해답.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에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 행복감을 최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에너지가 발산되게 된다. 자신이 행복감을 느끼는 자신이 가장 흥미있어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아이들의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그 아이만의 창의적인 솔루션의 등장을 야기한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무엇이든 일만시간을 채워 열심히 하면 그 때는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또한 앞의 이야기와 상통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1만시간을 집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론을 짓자면 모든 부모들은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것을 알아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