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 재창작

 1  견우와 직녀 재창작-1
 2  견우와 직녀 재창작-2
 3  견우와 직녀 재창작-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견우와 직녀 재창작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견우와 직녀 재창작
참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부터 나는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남편만나기 전까지 꽤나 파란만장했어. 지금도 주말부부라서 연애할 때처럼 잘 만나진 못하지만 우린 그만큼 애틋하다고 생각하거든. 우리의 그 당시 사랑이야기 지금부터 들려줄게.
우선 내 이름은 근영(勤. 부지런할 근/英. 꽃부리 영)이야.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이름 덕택인지 모든지 열심히 하려고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 사춘기 때 한번 씩 한다는 가출도 안하고 진짜 죽기 살기로 공부만 했어. 고3 말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문득 내가 뭘 해야 되는 지, 뭘 하고 싶은지. 내 자랑 같긴 한데 모든 열심히 하려고 하다보니까 집안일도 좀 하고, 특히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좀 잘했어. 옷을 수선하거나 뜨개질해서 니트를 만들거나 목도리를 떠서 우리 엄마 줬을 때 기뻐하시는 거 보고 너무 행복한거야. 그래서 미친 듯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모든 지방 여학생의 로망인 이화여대 의류학과에 들어갔어.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이화여대하면 남자애들이 아주 침을 질질 흘렸거든.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간다는 자부심과 지방에서 그 말로만 듣던 서울로 상경한다는 게 너무 설레서 며칠간 잠 한숨 못 잤던 게 갑자기 기억이 나네.
내가 입학했을 때가 언제였더라. 그래, 내가 85학번이니까 1985년도구나. 여중, 여고를 나와서 여대까지 지긋지긋하게 여자만 보고 살았던 내가 그래도 학교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수업 듣고 교복이 아닌 매일 내가 좋아하는 치마를 입으면서 다닌다는 생각에 들떴는데 막상 학교에 입학하니 주구장창 술 파티였어. 아침에 수업들을랴 틈틈이 과제할랴 저녁에는 폭탄주 마시랴 되게 마음도, 몸도 지친상태로 1학기를 빛의 속도로 보내고 있는데 친구가 미팅을 하재. 7월 7일 날. 숫자도 행운의 숫자만 붙여 논 날이면서 같은 1학년 연세대 야구부 애들이라는 거야. 어깨도 딱 벌어져서 허벅지도 장군감인 애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면서 수업시간 내내 엉덩이를 들썩 들썩 거리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내심 기대했지.
그리고 고대하던 7월 7일이 됐어. 우리 학교랑 연세대는 거리도 가까워서 중간 거리쯤인 까마귀다방에서 내 생애 첫 4:4 미팅을 했어. 이렇게 가까이서 남자를 보는 게 처음이라서 수줍게 앉아서 이야기를 서로 시작하는데 처음엔 남자 세명 밖에 안 앉아있더라고. 한 명은 좀 늦을거라고. “무스가 다 떨어져서 사러 갔나.” 하면서 재치있게 넘기더라. 세명이고 네명이고 나는 그 자리 자체로도 정신이 몽롱해서 그냥 커피만 홀짝 홀짝 마시는데 한 30분인가 지났을까 헐레벌떡 우리 자리로 미팅하기로 했던 친구로 보이는 애가 달려와서
“늦어서 미안하다. 내 일이 있어가. 내 이름은 견우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노?”
하면서 장난꾸러기 얼굴을 하고 앉대.
스무살 때 처음으로 상경해서 주변에 고운 서울말만 듣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니까 같은 전라도가 아니여도 지방 사람이라는 게 그저 반갑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거야.
“니 뭐꼬. 와 웃는데.”
“나 웃은 적 없시야. 아따, 늦게도 왔는디 겁나게 뻔뻔해블고마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