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소의 산양지몽 - 염소를 모르는 여자

 1  윤미소의 산양지몽 - 염소를 모르는 여자-1
 2  윤미소의 산양지몽 - 염소를 모르는 여자-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윤미소의 산양지몽 - 염소를 모르는 여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윤미소의 산양지몽(山羊之夢)
나, 윤미소는 염소(山羊)를 꿈꾼다. 고향을 그리워하듯 염소를 그리워한다. 바깥을 염탐하지 않는, 자기 내부에 틀어박힌 자의 침묵과 존재와 일체가 되어버린 슬픔인 염소. 야생적이어서 해안 벼랑 끝에 노숙을 시켜도 끄떡없는 염소. 하지만 비 오는 날은 공포에 빠지고 마는 염소. 윤미소의 꿈 속 염소는 비에 젖은 어둔 숲을 너무 오랫동안 견뎌온 그녀다. 진정한 시간은 모래 더미 속의 이빨처럼 찾아내기 어려우니 자신의 본질을 향해 훌쩍 뛰어내리라고 꿈 속 염소에게 윤미소는 말한다.
전경린의 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에는 이미 오래 전에 훼손된 집에서 평생을 보내는 추락의 경지를 체감하며 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동상이몽을 하면서도 끝끝내 벼랑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채 현실에 갇혀 산다. 감방에 들어가 책만 읽는 것이 꿈인 남편은 현실에서 일년에 세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 완전한 끝을 꿈꾸는 정연은 현실에서 꿈 자체를 버리고 ‘현실 부적응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대학원 진학을 꿈꿨던 현수는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던져버려 ‘오지 않는 사람’이다. 새어머니가 죽어서 염소가 되었다고 믿는 염소 남자는 현실에서 맡긴 염소를 되찾아가지 않는다. 우산이 자신의 숲이라 꿈꾸는 검은 박쥐 우산 청년은 현실에서 우산도 놓친 채 발작을 일으켜 앰뷸런스에 실려갈 뿐이다. 또한 목소리만 존재하는 수화기 너머의 남자들은 늘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그것을 얻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고독의 정량, 꿈의 정량, 운명의 정량이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충돌하고 또 충돌하나 결코 그 끝이 없다. 해서 그들은 진정하기도 어렵고 자족하기도 어렵고 순수하기도 어렵다. 야생의 숲으로 가지 못한 베란다 바닥 신문지를 딛고 있을 뿐인 본질을 찾지 못한 염소들인 셈이다.
나, 윤미소 역시 그들과 충돌하고 또 충돌한다. 그녀는 신중하지 못하게 과외 지도를 위해 광고지에 의뢰한다. 그로 인해 걸려오는 전화들에 속수무책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염소 남자로부터 불현듯 가벼워져 염소를 맡는다. 정보지 속의 집들을 찾아가보지 않고 그저 전화를 통해 이곳이 아닌 다른 곳, 그 어딘가에 있는 집들의 문을 두드린다. 남편의 외도에도 관대하여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덮어버린다. 이 모든 충돌에 윤미소가 대응하는 방식은 그저 잠을 자는 것뿐이다. 눈꺼풀만 덮으면 세상이 덮인다고 믿는다. 그녀는 자고 또 잔다. 얼굴에 붉은 줄들이 생기도록.
윤미소의 꿈은 염소를 꿈꾼다. 그녀는 염소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검은 박쥐 우산 청년의 우산을 통해 그녀가 꿈꾸던 지붕, 함석지붕이라 해도 지붕을 씌운 집인 숲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숲에서 검은 박쥐 우산 청년이 입맞춤한 자신의 본질을 되찾는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것이었던 자신을. 살을 꿰뚫을 듯한 야생의 기미를. 그리고 닫힌 우물처럼 자신의 몸 속에 묻혀 있던 또 하나의 염소의 얼굴을 비추어주는 염소를 알게 된다. 그녀는 한순간 깃털처럼 일어서 염소를 몰고 걷기 시작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심연 속에 현실보다, 현실의 현실보다도 더 강한 구름의 다리가 있는 곳으로.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 꿈의 모습은 고독한 충돌을 일으킨다. 고래는 그 충돌로 자신의 숲인 바다로 갔고 검은 박쥐 우산 청년은 작은 숲을 들었다. 장자의 연인은 실체가 없으며 단지 실체를 지배하고 서로를 잔인하게 떼어놓을 뿐이다. 윤미소는 더 이상 우산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검은 박쥐 우산 청년의 우산을 쓰고 청년의 숲이 아닌 윤미소의 숲으로 난 길을 걸어간다. 구름처럼 가벼운 구름의 다리를 건너서 야생의 염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