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공리주의에 있어 행위의 기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된다. 이는 사회의 최대 다수 구성원의 최대한의 행복을 구하는 윤리관이다. 옳고 그름과 의무의 궁극적인 기준은 공리의 원칙이라는 견해이다. 최대 다수의 선(善)을 가져오는 행위를 옳다고 보는 입장이 공리주의다. 옳은 행위란 곧 선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셈이다. 이때의 선(善)은 도덕과는 무관한 것으로 ‘좋음’ 또는 ‘이익’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이때 사용되는 ‘좋은’ 이라는 의미는 둘 다 같은 말의 단순반복이라기보다는 좋은 것이 곧 옳은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것이 옳은 것이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벤담은 밀은 행복과 쾌락을 동일시하였는데, 벤담은 쾌락을 계산 가능한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한 데 반해,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여 ‘질적 공리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벤담이 제시하는 기준은 ‘유용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쾌락과 고통만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벤담은 행위를 통해 쾌락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고통의 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동체에 봉사를 하는 것도,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의 개념이 아니라 결국에는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이라고 본다. 결국 각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동체는 일종의 허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익이란 결국에는 그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벤담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준칙이며 최고선이 되는 것이 바로 유용성의 원리이다.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 하고, 어떠한 행위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유용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러한 행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우리의 옳은 행위이며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벤담이 주장하는 유용성은 양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측정 가능하다. 쾌락의 정도는 양의 쾌락, 음의 쾌락으로 측정될 수도 있다. 우리가 행한 행위의 결과를 검토함에 있어 우리는 그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판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행위의 선택이 고통을 능가하는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하는지 또는 가능한 최소량의 고통을 산출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금전이 지속성면에서, 효율성면에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라고 하는데, 벤담의 문제점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수치의 돈이라는 것은 거지에게나 백만장자에게나 똑같은 쾌락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쾌락을 재는 기준이 되려면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벤담의 유용성의 원리가 모든 쾌락과 고통들이 하나의 동일한 기준을 통해서 측정될 수 있는 공통적인 성질을 지닌다는 사실이 전제로 깔려있다면 그 전제에서의 난점으로 유용성의 원리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도덕성의 기초를 최고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규칙인 도덕성의 원리들은 최고선이라는 목적으로부터 도출된다. 밀은 벤담이 양적 쾌락주의를 강조한 것에 반해 쾌락의 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질적 쾌락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덕을 포함하는 인간의 행복이 목적 자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행복이란 쾌락을,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의미하며 불행이란 고통이며, 쾌락의 결여를 의미한다."에서 볼 수 있듯 밀 역시 쾌락을 추구했지만, 밀에게서 쾌락은 벤담과는 조금 다르다. 쾌락이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 사이에는 우월함과 열등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은 다른 어떤 질과 양과 결합된 쾌락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 예를 들어, 다량의 식탁 포도주가 소량의 최상급 포도주보다 열등하듯이 말이다.
역시 행복과 관련해서도 쾌락의 양의 정도가 곧 인간의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삶에 포함된 쾌락의 질은 바보의 쾌락의 질보다 우월하고, 돼지의 쾌락의 질보다는 더욱 우월하므로 소크라테스의 삶에 상당한 불만족이 뒤따른다 해도 그의 삶은 여전히 쾌락의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다. 밀이 볼 때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는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이로부터 얻는 기쁨이다. 또한 행복의 구성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자유와 능력의 감정, 안도감, 인격 등의 요소들 사이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행위에 있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공리주의의 기준을 형성하는 행복은 결코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그 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행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리주의는 공정하고,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얻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벤담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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