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도강록 부분 읽고 산문 쓰기
연암 선생님 보십시오.
혹시나 낯선 이로부터의 편지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는지요? 알지도 못하는 낯선 여인에게서의 편지가 당혹스러운 건 아니신지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어 남기는 것은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고, 아니 평생을 다시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알기에 스스로의 인내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낼 수 없어 그저 읽히지 않더라도 속 편히 풀어놓기라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동하지 않으신다면 이대로 이 편지를 접으셔도 됩니다.
선생님을 뵈온 것은 지난 7월 통원보에서였습니다. 북경을 향하는 조선의 사신 행렬을 구경하다가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형형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시는 모습이 처음이었습니다. 그후 통원보를 떠나셨지만,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자 사방으로 알아보았고, 선생님께서 열하를 다녀오신 후 집필하셨다는 글 중 도강록 일부만을 겨우 구해 읽었습니다. 그것이 어찌 단순히 책이었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글로만 남겠습니까. 겨우 다스렸다 여겼던 마음이 일어 압록강을 넘기에 차마 그대로 있을 수 없어 감히 제가 기억의 선생님과 어리석은 제 마음을 몇 자 남기려 합니다.
어찌 그 더운 날 움직이셨는지요. 6월은 더위가 한창 시작될 때이고, 이 땅은 선생님의 땅보다도 그 더위가 더한 것을 진정 모르셨습니까. 장마까지 겹쳐 더위와 물을 헤쳐가며 이곳에 닿은 모습을 보니 어찌 안쓰럽지 않겠습니까. 건륭 황제의 만수절을 위한 행렬이었으니 어찌 선생님의 뜻대로 좋은 때를 만나 움직이겠습니까마는 먼 길 나서는 사람에게 날씨까지 적이 된다면 그 길이 너무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나라를 끌어가는 사람은 그 태어나는 날까지 백성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이 한 나라를 이끌고, 많은 백성을 다스릴 것을 태어나는 순간 아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럼에도 자신의 탄생이 그 무엇이라고 먼 길 고생해가며 찾아와야 하는지는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정한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하늘이 먹을 것 없고, 생의 기운이 없는 겨울에 임금을 내리셨다면 이는 백성의 굶주림을 더욱 생각하라는 의미이지 그 백성의 것을 도로 가져다 누리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허나, 그 더운 여름 길을 나선 선생님은 고단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뜻을 함께 하시는 담헌 홍대용 선생님, 형암 이덕무, 초정 박제가 선생님께서 청나라에 다녀오시며 보고 들은 것을 이미 서찰과 담화로 많이 나누셨겠지만, 어찌 그것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 하겠습니까. 좋은 기회를 만났음에 어찌 망설임이 있으셨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이 통원보까지 오신 길을 쉬이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더운 날씨와 장마로 인해 불어난 물을 겨우 넘어가며 오신 길을 기억하십시오. 이 길이 어찌 쉬운 길이겠습니까.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오는 길이며, 한 민족에서 다른 민족으로 넘어오는 길이며,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넘어오는 길이며,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넘어오는 길입니다. 북벌론에서 북학론으로 넘어가는 길이며, 오랑캐에서 친구와 스승으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적에서 동료로 넘어가는 길이며, 몸이 넘어가고 마음이 넘어가고 정신이 넘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장마로 불어난 강보다도, 뜨거운 기운으로 오래 걸을 수 없는 땅보다도 더 험난한 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생님께서 조선에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어찌 쉬운 길이 되겠습니까.
그러하여도 선생님은 그 길을 건너셨습니다. 더위도 물도 선생님의 길을 삼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의지와 뜻과 기대가 감히 자연물도 막을 수 없는 길을 만든 것이지요. 앞으로 선생님께서 조선에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물리적인 길이야 돌로 다지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다져야 하는 길이기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 두사람이 가고, 세 사람 네 사람이 가다보면 자연 길이 닦이게 되고, 이 길이 어찌 돌 따위로 닦은 길보다 못하겠습니까. 선생님의 지금 길이 마음 길을 닦는 첫 걸음이 되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매양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벽돌과 가마와 기와에 많은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별 중요한 것도 아닌 것에 왜 그리 마음을 두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가 책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조선에서는 벽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또한 가마의 제도도 다르다는 것을요. 나라가 다르니 모든 것이 다름이 당연하건만 그것이 모양이 아닌 쓰임의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돌보다 벽돌의 사용의 편리함과 단단함을 칭찬하셨습니다. 초청선생님의 말씀처럼 돌과 벽돌을 하나씩 놓고 본다면야 돌이 단단하지만, 그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의 단단함은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단단한 성벽을 쌓고 집을 쌓는 것에는 벽돌이 더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선생님, 생각해보셨습니까. 선생님께서 ‘캉’의 제도를 보시고 조선의 ‘온돌’과 결합하여 사용한다면 더 좋을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벽돌과 돌의 장점을 모으는 방법도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낱개 하나하나가 단단한데다가 단정하여 함께 모아 쌓아뒀을 때 그 단단함이 더해진다면 훨씬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강가의 작은 돌이 무늬를 만들고 진창인 마당을 정리하는데도 쓸모가 있음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 버릴 장점이 있겠습니까. 돌이 가지는 장점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일거라 생각됩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몸으로나 덕으로나 단단해지고 단정해 지며, 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여 합심하여 하나가 된다면 그 단단함이 오죽하겠습니까.
조선의 가마는 연료인 소나무를 많이 사용하고, 그 열이 고루 전해지지 않아 결과물의 양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그 문제입니다. 가마가 하나 생기면 그 주변의 소나무가 모두 초토화되고 그에 비해 결과물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가마는 제대로 사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정덕(正德)의 얘기를 언급하셨지요. 물건을 이롭게 사용하면 생활이 윤택해지고, 생활이 모두 안정되면 정덕은 자연 실현되겠지요. 조선의 가마는 이용(利用)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후생(厚生)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칠게 되어 감히 덕(德)을 말할 수도 없게 만들지요. 가마 같은 좁은 부분에서 이용이 되지 않는다면 조선의 많은 부분은 이용과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지 않을는지요.
조선의 집짓는 법도는 근본적인 논리를 지키지 않고 있더군요. 기와의 작고 큰 것이 문제가 아닌 위가 무겁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기와가 크고 그 사이를 흙으로 메우고, 그 무거움을 기둥이 받치는 것은 아래를 단단히 하여 위를 튼실히 받친다는 기본적인 논리에 어긋나 부실하고 불안하기 마련이지요. 흙으로 메운 구멍은 세월이 지남에 허술해지고 쥐나 뱀이 드나들어 그 불안은 더 깊어지지요. 머지않아 집은 무너질 것입니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가정이 무너진다는 것이며 가정이 무너진다는 것은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이는 단순히 집의 문제로 그칠 것이 아닙니다. 조선은 지붕의 역할을 수행할 임금과 신하들이 너무 비대하지 않습니까. 이 비대한 지붕을 약한 백성의 조세로 기둥을 세워 받치고 있으니 이는 오래가지 못할 집입니다. 그 사이 뱀과 쥐 같은 무리들이 끊임없이 기둥과 지붕 사이를 벌리고 있으니 이 어찌 안정된 한 나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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