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사조론 16세기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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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예사조론 16세기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6세기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
프랑수아 라블레의 에
발을 들여 놓다
1. 작가와 작품
2. 문예사조에서의 대상 작품의 위치와 역할
3. 주인공에게 쓰는 편지
4. 참고자료
1. 작가와 작품
- 프랑수아 라블레 Francois Rabelais -
프랑수아 라블레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파리 생 폴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에 적힌 글에는 1553년 4월 9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 대부분 묘비에 적힌 글을 근거로 하여 1483년 쉬농Chinon 근처의 라 드비니에르La Devunuer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블레는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부모의 재산이 장남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에 평민 계급의 똑똑하고 재주 있는 차남 이하의 자식들은 수도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법률에 대한 라블레의 해박한 지식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수도사가 되기 전에 몇 년간 고향에서 가까운 부르주나 앙제, 또는 푸아티 대학에서 교회법과 민법을 공부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484p
여느 다른 둘째 아들이 그러하듯 라블레도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수도원에서는 금욕주의와 절대적으로 신의 말씀만을 믿기를 권장했다. 고전과 그리스어를 수도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유명한 법률가들이 모여 있던 사교 모임에 나가서 학식을 교유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라블레는 점차 위마니슴humanisme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리고 위마니슴 사상의 근본인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에 들어와 있는 성경책은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라블레는 원서를 읽고 싶은 마음을 겸해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학문들을 터득했고 위마니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허나 의학, 특히 외과의학은 수도사에게 허락되지 않은 학문이어서 라블레는 수도원을 떠나 당시 가장 유명한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두세 달 만에 2년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그 배경은 수도원에서 공부한 고전 중에서 의학에 관한 지식을 미리 습득했던 학구열에 있다. 자격시험을 치른 바로 다음해에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그리스어 원전에 주석을 붙여 공개강의를 해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같이 법률, 신학, 고전, 언어, 의학을 바탕으로 하는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라블레가 맨 처음 쓴 작품은 이다. 그는 이 작품의 서문에서 그 당시에 유행하던 작자미상의 대중소설 에서 착안하여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에 나오는 거인의 아들로 팡타그뤼엘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서 인기를 끌자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인 가르강튀아를 라블레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게 되었다.
-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Gargantua Pantagruel -

라 로슈 클레르모의 왕 그랑구지에와 피피요 족 나비족이라는 뜻으로, 기독교 신앙에 적대적이었던 전설상의 야만족. 31p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