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힘줄과 뼈를 아프게 하며 그 살을 마르게 하고 그 몸이 먹을 것을 없이 하며 그 하는 일을 갈수록 뒤틀어지게 하여, 그 마음을 흔들고 그 바탕을 찔러서 그리하여 그 할 수 없던 것을 새로 더 얻도록 한다. -맹자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Ⅰ. 남강의 연보(年譜)
※ 1864년의 시대 및 지역적 상황
이 해는 고종이 열두 살 소년으로 임금이 되던 해요, 동학 교조 최제우가 대구에서 사형을 당하던 해다. 썩어지다 문드러지는 이조의 운명을 상징이나 하는 듯, 그 전해 육갑의 마지막인 계해(癸亥)년이 저물 무렵 철종이 돌아가자, 대원군은 조대비와 결탁하고 그의 어린 둘째 아들을 세워 임금을 삼고 자기가 정권을 쥐고 저 유명한 쇄국정치를 시작했다.…중략…그가 태어난 때가 그러했던 것 같이 그 태어난 환경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평안도에서 태어났다. 평안도 상놈이다. 평안도는 고구려의 옛 땅, 한 번 망한 뒤 그 원통한 혼이 강산에 서리었다. 거란, 여진, 몽고가 도둑해 들어올 때 마다 이들은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무참히 죽어야 했으므로, 상처는 아물 새 없이 다시금 생기곤 했다. 이러는 동안에 어느덧 그것이 민중의 성격을 이루어 이른바 청산맹호(靑山猛虎)의 평안도 기질이 되었다.…중략…이 평안도를 차별 대우하여 ‘평안도 상놈’ ‘평치’하며 머리를 못 들게 억눌렀다. 그 불평과 분이 쌓이다가 터지고 만 것이 홍경래(洪景來)의 난이었다.(1811~1812) 함석헌, 『남강 이승훈 선생의 생애』, 서울, 남강문화재단 편, 1988, p.15
◎ 1864.3.25 평북 정주읍에서 부 이석주(李碩柱)와 모 홍주(洪州) 김씨(金氏)의
(음 2.18) 2남으로 출생
◎ 1869(6세) 납청정(納淸亭)으로 이거(移居), 한문서당에서 수학(修學)
◎ 1874(11세) 임일권(林逸權)의 유기점에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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