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시대와 거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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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경의 시대와 거울의 시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동경의 시대’와 ‘거울의 시대’
거울 이전의 나
우물가에 웅크리고 앉아 계시는 뒷모습, 지금 내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여러 인상 중에 하나이다.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우물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꽤나 자자했던 우물이다. 돌로 만든 구박모양이 크기에 따라 차례로 놓여 있고, 그 사이를 나무에 홈을 파고 연결 지어 잔잔한 물이 흐르는 산사의 사진이나 영상이 있다. 그것을 그대로 땅에 박아 놓은 모양이 어렸을 때의 우리 집 우물이다. 윗물은 식수로 사용하는 것이고, 아랫물은 낫을 갈거나 여름에 수박이나 김칫독에 돌을 얻어 냉장고 역할을 했다.
장이 서는 아침이면 아버지는 논이나 밭을 한 바퀴 휘돌아 보시고는 낫을 갈고 우물가에서 면도를 하셨다. 날만 있는 도로코 면도기로 능숙한 솜씨로 턱에 난 수염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그렇지 않으면 얼굴 반만 비추는 깨진 거울을 숯돌에 받쳐놓고 면도를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은 일상사였다.
거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①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 ②어떤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모범이나 교훈이 될 만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거울이 내 안으로 들어 온 시기-거울과 반성을 연결시키는 행위-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고등학교 시절 이전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어릴 때 가재잡기는 내가 즐기던 놀이 중의 하나였다. 물 속 가재에만 집중하여 물이 거울도 될 수 있다는 고상한 생각은 머리 꽤나 굵어서 든 생각이다. 물론 거울이 집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 그런지 집에 있는 거울은 거의 깨진 거울의 모습이었다. 장롱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 혹은 벽면에 걸려 있는 거울은 상처 입은 거울들뿐이었다. 대개는 하트 모양의 문창호지로 땜질되어 있는 거울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거울 모습은 다른 친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술의 흔적들로 여겨진다.
거울의 사전적 의미 ①번이 작용한 시기라고나 할까
거울 인식의 나
내가 거울을 인식하고 그 너머를 사고한 것은 고등 교육의 영향이 지대하다. 그것은 거울보다는 반성의 의미가 강조되어 거울 너머를 사유하도록 강요된 것이다. 강요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시험에 출제되니 거울과 반성은 단짝이 되었다는 의미의 강요이다. 차츰 거울이 ‘비추다’는 것에서 ‘무엇’을 생각하는 시기였다. 그때부터 거울 너머에는 ‘반성’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거울과 반성이 단짝을 짓고부터는-반성에 무게중심이 옮겨지고-거울 앞에 서면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초등학교 현관문, 보통 교무실이나 교장실 옆에는 대형 액자 그림이 서 있었다. 그 그림 속 주인공은 내게는 단군 할아버지였거나 산신령이었다. 백발의 긴 머리에 이마에 띠를 두르고, 오른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대형 그림이 있었다. 그 앞에 서거나 현관을 들어설 때면, 그 손가락은 여지없이 내 심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할아버지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형 유리가 대신했다. 산신령 같은 할아버지의 대형 그림이, 대형 거울로 바뀌었다. 반성의 거울 효과는 내게는 배가되었다. 거울 앞에 서면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내 심장을 가리키며 양심을 건드렸다. 물론 지금도 그 할아버지는 내 의식 속에 있다. 그 밑의 글귀가 “너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던가?
구들장을 뜯어 연탄보일러를 놓고 우물을 메워 수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거울은 마음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어찌 보면 박 바가지에서 프라스틱 바가지로의 변환이랄까. 자리를 옮겼지만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시험지에서의 답안 찾기의 반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