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예술작품에나타난교사상과바람직한교사상과바람직하지못한교사상
바람직한 교사상과 바람직하지 못한 교사상
Ⅰ.서론
우리는 흔히 어떤 개념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이전에 겪었던 경험과 지식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반영되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어떤 교사가 바람직한 교사냐에 대한 고민을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은, ‘학창시절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 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많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종종 내가 만약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선생님 자리에 서 있게 된다면, 절대 저런 말은 안 해야지, 내가 들었던 이 말은 꼭 해줘야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나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해준 말 한 마디가 물론 내가 가르칠 학생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꼭 미치리라는 장담은 쉬이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선생님들에게서 느꼈던 고마움의 다만 얼마간이라도 똑같이 내 제자에게 되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바람직한 교사상’ 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내가 학생이었을 때 만났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기본적인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바람직한 교사상을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한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옳다’고 판단되는 것으로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일 지 모르겠으나 누구나 다가 고개를 끄덕거릴 만큼 옳은 것 보다는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자신이 규정할 수 있는 ‘바람직한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바람직한 모습에 따라 어떤 교사상을 정하느냐에 따라서, 교사의 행동과, 학생들이 보는 교사의 모습, 평가 등이 달라 질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교사에 대한 고민은 정말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확실한 기준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교사상을 정립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다. 누가 대신 판단 해주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나름의 확실한 줏대를 가지고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본론에서 예술작품에 나타난 교사상을 탐색하고 난 후,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사상과 바람지하지 않은 교사상은 어떤 것인지 정리해보도록 해 보자.
Ⅱ.본론
Ⅱ-ⅰ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등장하는 미르히 선생님 vs 에토 선생님
일본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있어 하는 음악 분야를 다룬 드라마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 된 ‘노다메 칸타빌레’를 다루어 보고 싶다. (처음 레포트 주제를 받자마자 떠올린 작품이였다.) 현재의 배경이 대학교이기는 하지만, 대학교수도 교사의 영역으로 넣고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육받아온 환경이 드라마에 제시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 다루어도 무방할 것으로 여긴다. 이 드라마에는 정말로 교사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미르히가 나오고, 교사로서 가장 스테레오 타입으로 여겨지는 에토라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미르히는 세계적인 작곡가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독특한 캐릭터이다. 학생들에게 진지한 면은 조금도 없고 언제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듯 하다. 장난기가 넘치고 유머러스한 그를 보면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대로 에토 선생님은 모든 면에서 정형적인 교사 타입이다. 그 중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언제나 수업에 임할 때는 진지하게 대하고, 학생이 장난 치는 것을 좋아 하지도 않는다. 그는 학생들에게 ‘부채 선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종이로 만든 큰 부채를 들고 다니며 말 안 듣는 학생들을 후려치는 버릇이 있어서이다. 험악하고 고집스러운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이 두려워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단지 외향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은 180도 다른 것 같아 보여도 묘하게 닮아 있는 모습이 있다. 바로,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둘 다 자신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이나 스타일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축은 흔들리지 않고 있더라도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도록 유동적으로 잘 변화 시킨다. 학생들의 내면을 파악하여 최대한 잠재력을 발휘 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에토 선생님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고집스러운 스타일이 결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패를 거듭해 깨닫고 난 후, 약간씩 변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정말로,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결론을 낼 수 있다. 실제로는 있을 법 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사에게 있어서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만은 이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 방식 등을 넘어서서 어떻게 학생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를 파악 할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다.
Ⅱ-ⅱ 경험담
어느 자리에서건, ‘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한 분만을 떠올린다.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이다. 몇 학년때의 선생님이라고 얘기 하지 않는 이유는, 지독한 악연으로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 나의 담임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게 선생님과 나는 앙숙이였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도 한번도 3년동안 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던 걸 보면 특수한 경우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유들 때문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1 학년 2학년을 거치면서 선생님과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체육선생님이셨는데 내가 말썽을 많이 부린 탓도 있었긴 했겠지만,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체육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배드민턴 채로 때리는 등의 행동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었다. 그것을 항상 참지 못하고 나는 언제나 직접적으로 선생님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버릇없는 행동이였지만 그때는 무슨 생각이였는지 집단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선생님에게 반항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또 다시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너무나 억울하여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었는데, 선생님 역시도 다시 나의 담임을 맡은 자기 역시도 그렇게 좋은 기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었다. 이 정도만 말해도 우리가 얼마나 앙숙이였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사고뭉치였다. 음악을 한다는 생각으로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좌절 되고 나자 인문계 고등학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도 계속해서 떨어졌었다. 그래도 중*상위권은 유지 하다가 중위권에 계속 머물렀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계속 해서 방황하고 친구들과만 대화하려고 할 뿐 아무랑도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예술고등학교의 진학이 꺾여 버려인문계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미디음악을 할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한학기에 한번 있는 개별상담때 그 말을 은근슬쩍 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성적이 떨어지는 나의 모습을 내가 싫어하는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싫은 반발심에서이기도 했다. 그 말에 선생님은 "니가 무언가 제대로 할 수 있을꺼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정말로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러고 난 후 선생님은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안 가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갈꺼기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은, 변명이고, 도피 밖에 안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셨다. 나도 나를 인정 안하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서. 나는 그 말에 울컥 반발심이 들었다. 무의식 중에 내가 나를 인정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나 아닌 다른사람에게 들으니 모든게 들켜 버린 것 같은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나를 인정하고 싶어서가 아니였다. 나를 진심으로 제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조*종례 시간에 말했던 내 앙숙, 담임 선생님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그게 정말 진심으로 여겨졌을 정도로 심하게 대했었기 때문이다. 한 꺼번에 모든 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해보자고 계획을 세우고 난 후 하나씩 바꾸어 나가 보았다. 한 2주 동안은 정말로 힘들었었다. 눈에 보이게 무언가 변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을려고 시작 했던 것이기 때문에 오기 이상의 무언가 내적 동기 유발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끊임 없이 스스로를 격려하기를 한 달, 선생님이 청소를 하고 있던 나를 부르셨다. (그 전에는 청소 시간에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었다.) 고등학교를 정해야 되는데 생각이 어떠냐고. 나는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때 보였던 선생님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서로에 대한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였다. 그때는 철이 너무 없어서 몰랐지만, 선생님이 했던 악담들은 독화살이 아니였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보면, 그 때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 안 했다면, 내가 이만큼까지 성장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한 장으로 짧게 결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도 제일 기억남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면서 내가 겪었던 경험담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그러면 다음에서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사상과 바람직하지 않은 교사상은 무엇인지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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