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 3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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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3 (낭만주의)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낭만주의를 배울 때 시간을 두고 걸쳐온 문예사조를 가진 서양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서양에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유입시켜 왔기 때문에 사조혼류현상 시대를 맞았다고 배웠다. 그러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들어온 서양의 낭만주의는 한국사조의 소화불량시대와 다르게 어떻게 유입되었으며 어떠한 특징이 있었고 또 한계는 없는지 알고 싶었다. 분명 문학도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다른 예술과도 결합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예술과 또 서양문화는 왜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흘러갔는지 그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주에 대한 반동이라는 형태를 띠며 태어났는데 우선 처음으로 사회적인 배경을 보면
‘18세기는 모순에 가득 찬 세기이다. 이 세기에는 철학적 입장만이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사이에 동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욕 역시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사조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어, 어느 시기에는 엄격한 고전주의적 관점에 접근하는가 하면 또 다른 시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회화적 관점에 접근하기도 했다. 또 이 시대의 고전주의 역시 합리주의와 마찬가지로 좀처럼 정의하기 힘들고 사회학적으로 다의적인 현상이어서, 때로는 궁정적·귀족적 계층이, 때로는 시민적 계층이 번갈아 주도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혁명적 시민계급의 대표적인 예술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라고 말한다.
1789년 서구사회는 귀족계급의 몰락과 구체제의 해체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미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낼 만한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기도 전에 기존의 가치관이 와해되었다. 이 정신적 폐허 위에서 세기말이 연출해내는 분위기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이었다. 이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경이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신세계는 과거의 폐허가 남긴 빈자리를 다시 채울 수 있는 새로운 것, 새로운 미래를 찾던 사람들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신세계에 대한 동경은 결국 그 당시 사회에 성행하였던 야만적인 것에 대한 취향, 이국 취향을 낳았다. 또한 대중산업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도시가 더욱 커지고 이런 대도시의 생활은 점차 개인주의적 생활 방식을 발달시켰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 발달에 의해 익명의 대중이 도시에 밀집하면서 대중산업사회 속에 함몰된 개인은 점점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각 개인은 자아를 찾으려는 욕구가 더욱 강렬해져 개인 취향의 존중을 외치고 개인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배경은 개인의 감성을 중요시 여기는 낭만주의를 낳았고 또 그러한 감성에 열렬한 호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본격적인 낭만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전기적 낭만주의 경향에 대해서 알아보면 본격적인 낭만주의 시대 이전에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이는 작품을 쓴 작가들은 대개는 거장들이었다. 이들은 고전주의 시대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던 시대적 전환기를 사는 동시대인들의 감수성을 잘 표현할 줄 알았다. 물론 이 감수성은 고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지만 아직 예술가의 세련된 붓 끝에 의해 활기차게 옮겨지진 못하였다. 그런데 왜 이런 감수성의 변천이 온 것일까?
‘그 이전의 세기가 다 그랬던 것처럼 18세기도 아무런 주저 없이 실제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혁명 이전에는 예술의 이러한 실제적 목적은 예술가들에게 거의 의식화 되지 않았고, 더구나 이러한 실제적 목적은 예술가들에게 거의 의식화되지 않았고, 더구나 이러한 실제적 목적으로부터 하나의 강령을 만든다는 일은 그들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혁명과 더불어 처음으로 예술은 정치적 신조가 되었고, 이때부터 예술은 사회라는 구조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토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강조되었다.’